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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정치기자들은 떠나라 - 임철순

입력
1999.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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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방송 이도준기자가 정형근의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에 소환되면서 언론장악문건의 파문은 예상 밖의 곳으로 번져가고 있다. 문건의 작성자가 중앙일보 문일현기자로 밝혀진 것만으로도 언론인의 윤리가 도마에 오른 판에 문건의 전달·제보자가 기자로 드러나고 그 기자가 돈까지 받았다니 기가 막힌 일이 아닌가. 같은 기자로서 주변사람들 보기가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그가 얼마나 빚이 많았기에 많은 빚에 쪼들리게 됐을까. 그리고 어디 손 벌릴 데가 없어 정치인에게서 돈을 빌렸을까. 갚지 않아도 좋다는 조건으로 돈을 빌렸으니 거액의 촌지를 받은 셈이다. 문건을 건네주기 전에 돈을 받았으니 문건제공은 채무상환행위와 다름없다. 이기자를 위해 빚보증을 서준 정치인도 여러 명이라고 한다.

또 정의원에게 건네준 문건이 10여건이 넘는다고 하니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 외에 또 다른 유사행위도 있을 수 있다. 기자와 정치인의 관계가 이런 식이면 국민회의 이종찬부총재에게 문건을 만들어 보낸 문기자도 형식과 규모가 어떤 식이든 금품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이미 일반국민들은 이상과 같은 의심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기자들이 썩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오래 전부터 아무 기대를 하지 않고 있던 터이므로 기자들에 대한 분노가 상대적으로 더욱 커진다.

사건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자고 나면 상황이 달라지고 있지만, 정부의 언론장악기도 여부에 대한 의심은 이제 언론인의 직업윤리문제로 초점이 바뀌었다.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할 기자가 정치브로커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정·언(政·言)유착이라는 비난에 대해 기자로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기자는 원래 의사환경(擬似環境) 속에 산다.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로 뉴스를 대하고 사물을 해석하는 자세를 견지하지 못하는한 기자들은 취재원의 환경을 자신의 환경으로 착각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처럼 정치권력의 현실적 작용력이 큰 나라에서 정치권력(또는 정치인들)과 일상적으로 대하는 정치부기자들은 스스로를 권력자나 그 주위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일부 정치지향적인 기자들은 그런 위험성 자체부터 망각한다. 또 한 출입처를 오래 나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야당출입기자는 야당의, 여당출입기자는 여당의 홍보인이 되고 만다. YS장학생, 「이회창 선거전략보고서」등 기자나 특정언론사와 권력 간의 유착사례는 그래서 생긴다.

10여년 전 윤경화할머니 피살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사를 맡았던 하영웅이라는 형사가 윤할머니의 집에서 거액의 금품을 훔친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다. 이 사실이 보도돼 그가 구속되자 동료들이 밤중에 술을 마시고 경찰서에 와 『하영웅이 나와라』하고 소리치며 울었다. 경찰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린 놈이라는 것이었다. 형사들이 그랬는데 기자의 명예를 여지없이 땅에 떨어뜨린 문기자나 이기자는 기자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겠는가.

기자 개개인의 자성과 제도적인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출입처제도를 비롯한 취재관행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하겠고 윤리규정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런 작업을 비롯한 언론개혁은 일관성있게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다만 언론개혁이 정부를 비롯한 외부의 힘에 의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그 점이 언론개혁의 어려운 점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바르고 빠른 길이다. 언론계로서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사건이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 언론이 거듭 나고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선은 검찰의 철저하고 엄중한 수사를 촉구한다. 이번 사건은 기자와 정치인의 유착관계를 철저히 규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리고 정치를 할 생각이 있는 기자들에게는 권력에 빌붙어 음성적으로 암약하지 말고 어서어서 언론계를 떠나라고 주문하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는 것이 그 자신이나 언론계를 위해 두루 도움이 된다. /임철순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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