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총총걸음을 친다. 「뉴 밀레니엄」이니 「21세기」니 하는 유행어에 떠밀려 1900년대 말을 향해 줄달음을 치는데, 20년 묵은 삼청교육 피해자 보상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어 여론에 호소한다.삼청교육 피해자들이 얼마나 참혹한 일을 당했는지는 재론할 필요도 없을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부가 피해보상 방침을 백일천하에 공표하고도 10년이 넘도록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은 88년 11월 26일 특별담화를 통해 『피해자들의 신고를 받아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전국에서 3,221명이 보상신청을 했다. 군부대에서 자행된 혹독한 폭행으로 숨진 54명의 사망자 유가족과, 한평생 불구 또는 병자로 살아가는 부상자들이 대다수 포함됐다.
사조의 말이 담긴 대통령의 담화를 접한 우리는 적절한 보상만 이루어진다면 피멍 든 통분의 기억을 털어버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3년간 반복된 정부와 정치지도자들의 거짓말과 책임회피에 농락당한 나머지 육신의 상처보다 더한 정신의 고통에 신음하게 되었다.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金泳三) 정부는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특별법 제정을 외면하더니, 국민의 정부라는 현정권도 똑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지금 정권이 야당이던 96년 11월 국회의원 73명의 발의로 삼청교육 피해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이 국회국방위에 제출됐는데도 아직 처리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현 정권 출범후 우리는 희망에 넘쳐 김대중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 국민회의 총재대행 등에게 두번 세번 피맺힌 한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신은 번번이 「관련기관에 검토하도록 통첩했음을 알린다」는 식이었다.
수천명의 국민이 아무 죄도 까닭도 없이 국가권력에 의해 피해를 당했는데도 보상을 외면하는 것은 인권국가를 지향한다는 나라의 도리가 아니다. 더 이상 특별법 처리를 미룬다면 우리는 보상의지가 없는 것으로 단정하고 극한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문동수 전국삼청교육동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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