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 부시코」「나라야마 부시코」는 국내에서 네번째 개봉(30일)되는 일본영화이다. 거장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73)의 83년도 작품으로 「우나기」(98년)처럼 그해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나라야마(楢山)는 일흔살 된 노인을 산채로 버리는 일본의 전설적인 산. 「기로(耆老)풍습」이 만들어낸 죽음의 산이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고려장(高麗葬)이란 근거없는 속전(俗傳)이 있었다. 부시코(節考)는 노래. 고희를 몇달 앞둔 할머니의 손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할머니는 운이 좋아. 눈 오는 날에 나라야마에 갔다네』
다츠야마(오가타 켄)는 마흔이 넘어서도 오린(사카모토 스미코)을 『엄마』라고 부른다. 그 「엄마」를 버리고 산을 내려오는 날은 정말 눈이 내렸다. 되돌아가 『엄마, 눈이 와요』 라고 외치는 중년의 아들에게 엄마는 부처처럼 앉은 채 돌아가라고 손짓한다. 엄마는 삶을, 아들은 슬픔과 아픔을 밤새 내리는 눈 속에 묻는다. 일본 북쪽 산골마을에 소리없이 내리는 눈은 산 자와 죽어가는 자, 모두에게 순종을 가르친다. 모든 인연과 서러움을 덮어버린다.
후카사와 시치로(深澤七郞)의 소설이 원작인 「나라야마 부시코」는 「죽임」 에 관한 영화다. 일흔이 되어서도 치아가 튼튼한 오린은 나라야마에 가기 위해 일부러 이를 부러뜨린다. 자연의 이치까지 저버리는 그의 죽음에 대한 재촉은 삶의 포기가 아니다. 지독히 가난한 사람들에겐 생존보다 오히려 죽음의 선택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인은 나라야마에 묻히고, 이웃의 감자를 훔친 가족은 생매장된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논에 버리고, 계집아이는 한줌의 소금과 맞바꾼다.
버리고 죽이고 바꾸는 일은 역설적이게도 모두 「삶의 길」이다. 감독은 그것을 가장 솔직하고 원초적 에너지인 섹스로 표현한다. 다츠야마는 새로 얻은 아내와 격렬한 정사를 벌이고, 그 정사장면을 훔쳐본 동생은 그 욕정을 달래지 못해 개한테 달려든다. 다츠야마의 아들 역시 이웃집 처녀와 섹스에 열중한다. 그러나 음침하지 않다. 뱀과 개구리의 교미장면을 통해 섹스가 자연의 이치임을 강조하고, 「왕따」인 다츠야마의 동생이 보이는 반응과 행동을 통해 성의 결핍과 억압을 해학적으로 풀어간다.
범자연적이며 범신론적인 감독의 태도. 때문에 「나라야마 부시코」는 상투적 비극이 아닌 삶과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이 됐다. 자신의 스승인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유미주의를 거부하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과장이나 인위적 미학을 추구하지 않는다. 죽음을 준비하며 일상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오린, 「엄마」를 버리려고 길고 긴 시간 산을 오르는 다츠야마.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양식으로 묵묵히 그들을 응시할 뿐이다.
마지막 장면은 엄마가 남긴 옷을 입은 아내와 며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겨울밤을 맞는 다츠야마의 모습. 「나라야마 부시코」 에서는 이것이 인생이다.
오락성★★★☆ 예술성★★★★ (★5개 만점,☆은 1/2,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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