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근안이오, 그동안 한국에 있었소』28일 오후 8시30분 수원지검 성남지청 당직실. 고문기술자 이근안(李根安·61)은 12년 동안의 도피생활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어안이 벙벙한 당직 직원에게 이는 『자수하러 왔소』라고 짤막하게 부연했다.
놀란 검찰 직원은 낡은 수배자 사진을 확인한 뒤 당직근무를 서던 형사2부 이재헌(李載憲) 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근안이 자수해왔습니다』
이 검사는 곧바로 309호실로 이를 데려와 주민등록증과 얼굴을 대조하고 이기배 성남지청장에게 보고했다.
이검사는 이씨에게 차를 권하고 도피행각과 자수경위에 대한 자술서를 쓰도록 했다. 이씨는 담담한 표정이었고, 12년동안의 은둔생활을 한 사람치고는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씨는 자술서에서 『21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재판을 받은 동료들의 형량이 비교적 가벼웠고, 오랜 도피생활에 지쳤다』며 『재판을 보고 마음이 안정됐고 심경의 변화를 느꼈다』고 자수 이유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날 오후 11시20분께 수배청인 서울지검 추적전담반 직원들에게 인계돼 서울로 압송됐으며 검찰의 한 직원에게『이제야 홀가분하다』는 말로 심경을 피력했다.
○…이근안경감 고문치사사건의 수사를 담당해온 서울지검 문효남(文孝男)강력부장은 28일 퇴근했다 비상연락망을 통해 이씨의 자수를 통보받고 급거 서울지검으로 다시 출근해 수사를 지휘했다. 강력부 검사들도 속속 청사에 도착해 그동안 이씨에 대한 자료를 점검하는 등 본격수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임휘윤(任彙潤)서울지검장 등 검찰수뇌부도 시시각각 이씨의 압송과정을 점검하는 등 12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씨의 수사에 대비했다.
○…검찰은 경찰청에서 지문감식반을 불러 자수한 이씨의 신원을 재차 확인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또 검찰은 수사관을 이례적으로 10명씩이나 보내 이씨를 서울지검에 압송하는 등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해 만전을 기했다.
이에앞서 이씨가 자수한 수원지검 성남지청도 청사 철문을 굳게 잠근 채 출입자를 통제해 취재진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이씨의 자수동기를 묻는 취재진들의 질문에 한 검찰관계자는 『12년동안 사법기관의 눈을 피해 도망다니느라 그동안 얼마나 피가 말랐겠느냐』며 『아마도 더 이상 도피하기에는 자신도 지쳤을 것』이라고 이씨의 심경을 대변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에 대한 사법처리로 고문과 조작수사 등의 불행했던 한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가 자진 출두한 성남지청은 28일오후 11시 현재 정문출입구 셔터를 내린 채 취재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확인을 하지않고 있다.
성남지청에는 이날 오후 10시30분께 이 전경감을 인수하기 위해 서울지검 강력부 직원 4명이 서울50나 8829호 쏘나타 승용차로 도착했으나 오히려 취재진에 가로막혀 청사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성남지청은 언론에 이씨의 자수사실이 알려진뒤 걸려오는 전화조차 아예 받지 않는 등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끊어 조사 진행 상황을 알아보려는 대검과 서울지검 간부들마저 애로를 겪었다.
성남지원 야간당직 판사도 상황파악을 위해 당직실에 전화를 했으나 『알려줄 수 없다』며 거절 당하기도 했다.
서울지검 수사관들은 『어디서 왔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처음에는 『성남지청 소속으로 비상소집돼 왔다』고 둘러댔다 나중에서야 서울지검 소속임을 털어놓았다.
이날 밤 성남지청에는 이씨의 조사진행 상황을 취재하려는 취재 사진기자 100여명이 몰려 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이씨가 자술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남지청은 3층 4개 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성남지청에는 이날 이씨의 자수소식을 듣고 취재진 70여명이 몰려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정덕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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