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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씨] "48년전 美軍機악몽 잊지못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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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기씨] "48년전 美軍機악몽 잊지못해요"

입력
1999.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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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악몽은 죽을 때까지 결코 잊지 못할 겁니다』 경기 양주군이 고향인 홍원기(洪元基·62·사진)씨는 1951년 1월12일 자신에게 일어났던 엄청난 비극을 평생 간직한 채 살아왔다.당시 14세의 소년이었던 홍씨는 그날 오전 9시께 부모님과 4남매, 외할머니 등 10명과 함께 1·4후퇴길에 올라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오산쪽으로 향하던 중 용인군 수지면 풍덕천리에서 미군 전투기의 느닷없는 폭격을 받았다. 상공을 날던 미군의 「세이버 전투기」가 갑자기 기관총을 퍼붓자 놀란 홍씨 가족등은 『우리를 중공군으로 오인한 것』이라 생각해 보따리를 머리위에 이거나 손을 흔들어 피란민이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폭격으로 홍씨는 부모님, 누나 옥기(당시15세)씨, 외할머니등 모두 6명을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됐다. 이후 홍씨는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를 버는등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한때는 두 여동생을 고아원에 보내야 하는 아픔까지 겪었다.

59년 한국일보 사회부기자로 언론계에 투신, 40여년간 근무하면서 한국일보 이사등을 역임했고 현재 신문마케팅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는 홍씨는 27일 본보기자와 만나 『당시엔 너무 충격을 받아 부모님 시신을 수습할 정신조차 없었다』며 『89년 3월 경기 양주군에 가족묘원을 마련했지만 부모님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죄책감은 아직도 남아있다』고 눈물을 흘렸다.

최근 김종필 국무총리와 박준규 국회의장, 클린턴 미대통령과 코언 국방장관등에게 당시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낸 홍씨는 『전쟁중에 일어난 일이라 해서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현경기자

moo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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