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7시께 여의도 국민회의 당사에서는 이영일(李榮一)대변인, 정동채(鄭東采)기조위원장등 참석 가능한 몇몇 당직자가 모인 가운데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참석자들의 표정은 모두 상기돼 있었다.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이 현 정부의 「언론장악」음모를 폭로하겠다며 국회 본회의에서 공개한 문건의 작성자는 놀랍게도 중앙일보 문일현(文日鉉)기자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강래(李康來)전청와대정무수석이 문건을 작성했다고 주장한 정의원의 폭로를 완전히 뒤집는 내용이었다.
결정적인 단서는 26일 국민회의 대변인실로 걸려 온 3차례의 제보전화였다. 30대 초반으로 판단되는 제보자는 이날 낮 첫 전화통화에서는 『대변인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전화를 끊었고 두번째 전화에서는 황소웅(黃昭雄)부대변인과 통화하기도 했다.
세번째 전화에서 이 제보자는 이대변인에게 『중앙일보 문기자가 문제의 문건을 작성했으며 중앙일보 간부가 이를 정의원에게 전달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놨다. 제보자는 이 문건에 접한 언론사 간부의 명단을 얘기하기도 했고 정의원에게 전달된 경로를 밝히기도 했다.
제보전화를 받은 국민회의는 초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우선 문기자 본인의 진술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 당의 한 핵심당직자가 중국 베이징대(北京大)에서 유학중인 문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실확인을 요청했다. 문기자는 비교적 순순히 문건작성 사실을 시인했다.
이후 추가적인 사실확인 과정에서 중앙일보 고위간부가 문기자에게 문건작성을 지시했다는 「설」도 여권의 귀에 들어왔다.
국민회의가 문제의 「폭로문건」이 언론계와 관계가 있다는 심증을 갖게 된 것은 사실 제보이전이었다. 정의원이 문건을 폭로한 25일 이후 채 하루가 지나가기도 전에 여권 내부에선 「모신문사가 사전에 문건을 확보, 국민회의에 항의를 한 적이 있다」 「당직자 회의에서 언론인 개입 공개 여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는 등의 얘기들이 어지럽게 떠돌아 다녔다. 이런 심증때문에 여권은 수사당국등 모든 수단을 동원, 문건 작성자 찾기에 나선 상태였고 그 와중에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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