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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美의 고압적 뉴라운드 협상 - 장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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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美의 고압적 뉴라운드 협상 - 장하준

입력
1999.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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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종결된 우루과이 라운드(UR)에 이어 또 한번의 대규모 다자간(多者間) 무역 협상이 다가오고 있다. 다음 달 미국의 시애틀에서 시작되어 2003년까지 계속될 예정인 소위 「시애틀 라운드」(뉴라운드)가 그것이다.시애틀 라운드는 시작도 하기 전부터 여러 가지 진통을 겪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미국의 고압적이고 비신사적인 협상 태도이다. 특히 물의를 일으킨 것은, 시애틀 라운드의 협상을 의한 의제를 결정하는 비공식 회의의 의장인 나이지리아 대표 알리 음츄모(Ali Mchumo) 대사가 이달 초 제출한 의제 초안이, 미국이 원하는 농업 및 서비스업의 개방 문제를 부각시키고 미국에 불리한 반덤핑법의 남용 문제는 회피하고 있는 것이 밝혀진 사건이다.

음츄모 대사와 미국측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제네바의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음츄모 대사에게 자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 의제를 설정하도록 상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있다.

미국 호주 아르헨티나 등 대규모 농업 수출국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자신이 내놓은 의제 초안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국 일본 스위스 노르웨이 등이 농업개방 문제에 대해 공동으로 대안적 의제 초안을 제시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음츄모 대사는 급기야 21일 수정안을 내놓았다.

이 수정된 의제 초안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한 나라가 많지만, 일단 아쉬운 대로 이를 토대로 협상 의제를 마련해보자고 합의되어 이 사건은 일단락 지어졌다. 그러나 이번에 미국이 보여준 행동에 환멸을 느낀 다른 나라들이 과연 앞으로 진행될 협상과정에 얼마나 신뢰를 가지고 임할 지 의문이다.

국제무역 협상에서 충돌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서로 다른 도덕적 믿음과 법체계, 그리고 경제적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라들간에 「경기의 규칙(rules of the game)」에 관한 뚜렷한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강대국들이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경기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이번에 미국이 보여준 행동은 극단적인 예였지만, 스위스 일본 등 미국의 농업 개방 압력에 반대하는 선진국들도 제조업 부문에 오면 자유무역론을 내세우면서 후진국들에게 제조업 보호정책을 철폐하거나 급격히 완화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산업화 초기에 관세 보조금 등을 통하여 자국의 유치산업(幼稚産業)을 보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타국의 유치산업 보호를 강력히 제재하려 하는데 대해 후진국들은 불만이 많다.

일본이나 우리나라가 유치산업 보호를 통해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지금은 자유무역의 수호자 행세를 하는 미국마저도 남북전쟁이후부터 2차대전 때까지 100여년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을 자랑하며 유치산업 보호에 주력했던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음을 볼 때, 많은 후진국들이 선진국들의 태도가 위선적이라고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제무대에서 어느 나라나 자기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강대국들이 약소국들의 이해 관계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들의 국익만을 우선하는 국제협상에 임한다면, 약소국들은 협상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을 힘의 논리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협조할 도덕적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상황에서 진정으로 협력적인 국제질서를 구축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큰 힘을 가진 자일수록 그 힘을 더 겸허한 자세로 행사해야 한다는 국내 정치의 교훈이 국제 무대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장하준·영국케임브리지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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