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혹한 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 선봉에 섰던 이문영(李文永·72) 교수. 어느덧 고희를 두해나 넘긴 나이에 두꺼운 돋보기 너머로 백발이 성성하다. 그런 그가 지난 2월5일 덕성학원 이사장에 취임한 이후 온갖 구설에 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까지 서야 했다. 이사장 취임후 학내 분규로 수업거부 사태까지 가는 등 파행운영되던 덕성여대 정상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부에서는 비난을, 일부에서는 찬사를 동시에 받고 있다. 「세파」에 시달리고 있는 그를 서울 운니동 덕성학원 이사장실에서 만나봤다.-이사장님은 월간 「씨알의 소리」 5·6월호에서 DJ의 정치양태를 비판하면서 『다섯번 죽었다 살아난 정의감과 원칙으로 흩어진 민심을 잡으십시오』라고 당부했습니다. 반면 국감에서는 『재야 시절 이문영 교수의 모습과 너무 다르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당부하고 충고받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제가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과 경기대 석좌교수를 하면서 덕성학원 상근 이사장을 겸해 세 곳에서 총 1억원 이상의 월급을 탄다고 문제삼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태재단 이사장직도 사임했지만 무급이었고 경기대에서는 월급을 받습니다. 이사장 급여는 전임 이사장(박원국·朴元國)이 저를 초빙할 때 총장(이강혁·李康爀) 월급과 똑같이 준다고 해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학교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면 받지 않겠다고 이미 발표했습니다』
-이사장 취임후 덕성여대 정상화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셨나요.
『저는 말썽을 빚은 전 이사장쪽 사람들을 내쫓는 게 개혁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현 총장과 제 비서까지 전 이사장때 임명된 사람입니다. 저는 개혁을 패싸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이사장과 총장과 보직교수가 갖고 있는 부당한 권력을 덜어내 평교수와 학과에 돌려주자는 것입니다. 저도 목에 힘줄 수 없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왜 일부에서는 이사장 반대운동을 하는 겁니까.
『개혁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합리적인 원칙을 거부하고 그동안 누리던 기득권을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고 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전 어떡하든 학교를 정상화시켜 놓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재단쪽이든 교수들이든 인간적인 신뢰를 배신당하는 상황에서는 난감할 뿐입니다』
-전 이사장이 복귀하면 물러나실 겁니까(전 이사장은 최근 교육부를 상대로 낸 이사장 취임승인취소처분 취소청구소송에서 2심까지 승리,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다).
『임기는 2001년 11월까지지만 이사회의 결정에 따를 것입니다. 단 전 이사장이 복귀해서 예전과 같은 식으로 학교를 운영한다면 학교는 다시 어려워질 것입니다. 제가 취임한 후 지금까지 단 한 강좌도, 단 한 시간도 수업이 중단된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년 예산을 잘 짜야 합니다. 교육부에 전임교수로 보고해놓고도 뒤로는 계약제로 임금을 적게 줬던 분들을 정식교수로 발령할 계획입니다』
-경기대에서는 강좌를 맡고 계십니까.
『건축대학원에서 「미(美)와 문명」을 목요일 오후에 강의합니다. 강의내용을 묶어 후년쯤 「마틴 루터의 95개조와 미국 행정」으로 펴낼 계획입니다. 제 서재 뒤에는 피카소가 청색시대때 그린 「늙은 기타리스트」가 걸려 있습니다. 이 그림을 참 좋아해요. 낡은 옷에 피골이 상접한 노인이 눈은 장님인데 비쩍 마른 손으로 기타를 치는 모습입니다. 저는 역시 학인(學人)입니다. 끝까지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행정학을 전공하셨는데 이사장 일을 해보시니까 이론과 실제 사이에 괴리를 느끼지 않습니까.
『상당히 많이 느낍니다. 그러나 비난이 정당하다면 반성하고, 부당하면 참고 노력할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한때의 비난은 사라지겠지요』
약력
1927년 서울 출생
73∼84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해직. 민주국선언 서명, YH사건, 김대중(金大中) 내란음모사건 등으로 4년 10개월간 투옥.
98년 2월∼99년 10월 사단법인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
97년 3월∼현재 경기대 석좌교수
99년 2월∼현재 학교법인 덕성학원 이사장
이광일기자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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