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내평생 잊지못할 일] 6·25 피란중 있었던 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내평생 잊지못할 일] 6·25 피란중 있었던 일

입력
1999.10.27 00:00
0 0

충북 영동군 노근리에서 양민학살사건이 일어났던 50년. 그해 여름은 무척이나 덥고 길었다.한국전쟁이 터지자 한반도 남쪽 여수항 건너 돌산이란 섬에도 군복을 입은 인민군이 들어왔다. 나는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다. 피란을 가지않아도 될 나이였지만 48년 여수에서 일어난 14연대 반란사건 당시 나이 어린 중학생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것을 체험한 뒤라 어머님의 성화에 못이겨 피란을 갔다.

그곳에서도 부유한 집안 사람들은 모두 뱃길을 따라 임시수도인 부산으로 피신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연고를 찾아 두메산골이나 외딴 섬으로 갔다. 나도 돌산섬 끝에 있는 신복리 작은 복골의 큰집으로 피란을 갔다.

그곳은 작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서너 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이었다. 혹 인민군이나 내무서원들이 마을에 올까 싶어 낮에는 도시락을 싸서 지게에다 매달고 깊은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거나 바람이 불지않고 맑은 날에는 낚시 도구를 챙겨 범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나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8월말이나 9월초순이었던 것 같다.

인근 마을로 피란온 몇 분과 같이 낚싯배 한 척을 빌려타고 먼동이 트기 전바다로 나갔다. 그날따라 바람 한점 없이 쾌청한 날씨였다. 노를 저어 서너시간 가니 이곳 저곳에서 몰려온 크고 작은 낚싯배들이 100여척이 넘었다. 금오도 앞바다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은 낚싯줄을 드리우고 조기 낚시를 하기 시작했다. 고기는 많이 낚이지 않았지만 태평양으로 탁 트인 시야가 웅크렸던 마음을 활짝 트이게 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낮졸음이 슬쩍 올 무렵 제트기 한대가 바다 해면을 스치듯 지나갔다. 모두들 일어나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거의가 공산군이 싫어 피란온 사람들이라 미군기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얼마쯤 있으니 3대씩 편대를 지은 제트기가 우리를 향해 총알을 퍼붓는 것이었다. 바다 표면은 하얗게 방울지고 배는 침몰하고 사람들은 괴성을 지르는 등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나는 기총소사에 의해 바닷물이 뽀얗게 튕겨져 다가올 때면 해심을 향해 무자맥질을 했다.

그러다 비행기가 지나갔을 때쯤 되면 해면으로 올라와 심호흡을 하고 또 비행기가 다가오면 자맥질을 하였다. 그리고 이름 모르는 작은 섬을 향해 헤엄쳐갔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모래톱에 누워있었다. 육지에 닿자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횃불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고 여기저기서 곡성이 들려왔다. 그날 참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지 50년이 다되도록 왜 미군이 우리에게 총을 쏘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제대로 된 조사 한번 없었으니 애통한 일이다. /윤형두·범우사 대표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