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라 늦잠자려는 아이들을 서둘러 깨우고 김밥까지 준비해 예쁜 찬합에 담았다. 고구마를 캐기 위해서였다.문득 올봄 5일장에 나가 대궁이 빨간 고구마싹 서너단을 산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어릴때 살던 집의 이웃이 자투리땅을 고구마 밭으로 선뜻 내주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가 하시던대로 퇴비를 넉넉히 채우고 두둑하게 고구마 심을 둑도 만들었다. 그리고 한뼘 간격을 두고 하얗게 뿌리가 내린 고구마싹을, 물을 주고 부드러운 흙을 덮어가며 정성껏 심었다.
하지만 밭과 집의 거리가 멀어 고구마를 제대로 가꾸지는 못했다. 가게 일이 바쁘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노력과 정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던 중 밭 주인이 전화를 해왔다. 고구마순이 실하니 따다가 나물 무쳐 먹으라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고구마밭에 올라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제대로 가꾸지 못했는데도 이랑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성했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해 돌봐준 밭주인이 여간 고맙지 않았다.
고구마를 캔 그날은 하늘에 구름 한점없는 청명한 날이었다. 쌀가루처럼 보드라운 흙속에서 자란 고구마를 캤는데 토질이 좋아서인지 하나같이 빨간 밤고구마였다. 그것도 가족처럼 한 줄기에 너댓개씩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있었다.
아이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그동안 고구마는 가게에서, 혹은 트럭에서 사먹는 것으로만 알았던 아이들에겐 여간 신기한 일이 아닌 듯 했다. 『엄마. 고구마를 이렇게 땅에다 심으면 되는데 그동안 왜 사먹었어요?』
고구마 수확은 단순한 수확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땅의 고마움을 새삼 깨닫는 것 같았다. 뿌린만큼 거두고 땀흘려 노력한만큼 수확을 얻는 것. 고구마를 캐면서 그 진리를 터득한 아이들이 여간 대견하지 않았다.
그날 우리 가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을의 풍성함을 한아름 안고 너무도 행복했다. 향긋한 산국화 향기까지 우리 가족과 함께 한 그날. 역시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이다.
/고순자·경기 가평군 외서면 청평8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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