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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중근의사 묘소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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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안중근의사 묘소찾기

입력
1999.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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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거든 하얼빈 공원 옆에 묻어 망국의 선비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고, 대한의 독립이 오기 전에는 고국에 매장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내가 죽은 뒤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 하라. 2,000만 형제자매에게 내 말이라 하고, 교육을 장려하고 실업에 힘써 국권을 회복하여 죽은 자로 하여금 회한이 없도록 해달라』 안중근(安重根)의사가 1909년 10월 26일 중국 뤼순(旅順)형무소에서 순국직전 정근 공근 두 동생에게 남긴 유언이다.■교수형이 끝난 뒤 동생들은 유해를 돌려달라고 일본 사법당국에 요구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제는 형무소 부근에 안의사를 매장했다. 다른 사형수는 둥근 나무통에 아무렇게나 시체를 넣어 묻었으나, 안의사 유해는 한국식 관에 넣어 묻었다 한다. 그러나 지금 안의사 묘소가 어딘지 확인할 길이 없어 유해봉환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형무소 관리권이 일본 소련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가 매장 기록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70년대 중국 외교부의 협조를 얻어 정부 조사단을 현지에 보냈으나 유해발굴에 실패했다. 당시 중국측은 안의사가 묻힌 곳이 개별 묘지가 아니라, 큰 도랑을 파고 시체를 묻은 뒤 평탄작업을 한 집단매장지였기 때문에 매장장소를 정확히 짚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지금 형무소는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주변에는 아파트가 들어서 더욱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재일동포 정치학자 김정명교수의 중국 현지조사 결론이다.

■한중 수교후 우리도 안의사 묘소 찾기에 많은 노력을 쏟았으나 아무 성과가 없었다. 중국정부 인사들의 한국방문이나 한국 정치인들의 중국방문 때 이 문제를 거론하면 중국측은 어제나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협조가 성사된 일은 없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협조요구를 하지 않는다. 어제는 안의사 의거 90주년이었다. 정부의 공식 조사보고서 한 편 없는 기념일을 보내며 애국선열의 유언을 외면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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