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정호승 새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정호승 새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입력
1999.10.26 00:00
0 0

『이제는 묵언(默言)으로 시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침묵의 방법으로 언어가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합니다』올해로 등단 20년, 7번째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작과비평사 발행)를 낸 정호승(49) 시인은 요즘 시를 생각하는 자신의 「바탕 글꼴」을 「묵언」이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최근 그의 시편에서는 극도로 말을 자제하는 자세가 눈에 띄게 드러난다. 시인이 말을 아끼는 대신, 독자들은 그의 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명료한 이미지의 세계를 보게 된다. 이번 시집의 서시(序詩) 「하늘의 그물」 같은 시가 그렇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다만 가을밤에 보름달 뜨면/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기러기들만/하나 둘 떼지어 빠져나갑니다」(「하늘의 그물」전문). 갈수록 난해하고 힘들어지는 요즘 시의 분위기에서 그의 시편은 이렇게 어느 평자의 말처럼 「맑고 순수하며 어딘지 피를 당기는 음악성」(시인 김승희) 같은 것이 들어있다.

정씨의 이번 시집에는 그가 문예지 등에 전혀 발표하지 않은 시 74편이 수록돼 있다. 97년 낸 그의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는 본격시집으로서는 드물게 10만부나 팔려나갔다. 그것이 부담스러웠을까, 그는 새로운 시집을 전작시집으로 묶었다.

그의 이번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돌부처의 이미지다.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일제시대에 목이 잘려나가, 몸뚱이는 몸뚱이대로 목은 목대로 흩어져있는 돌부처들이 많다고 한다. 「눈물이 나면…」에는 거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소년 부처」라는 꼭같은 제목의 시가 두 편 들어있다. 「여름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조르르 관광버스에서 내려/머리 없는 돌부처들한테 다가가/자기 머리를 얹어본다//소년부처다/누구나 일생에 한번씩은/부처가 되어보라고/부처님들 일찌기 자기 목을 잘랐구나」. 머리 없는 돌부처 위에 자신의 머리를 얹는 소년들의 모습에서 시인은 생명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런 마음은 스스로 나이 먹어가며 아버지의 자리를 생각하는 다른 시편과 어우러지기도 한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가/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아버지의 나이」부분). 돌부처에 머리를 얹는 소년의 모습이 나무그늘에 지게를 놓고 쉬며 스스로 나무의 그림자가 되는 아버지의 모습과 닮았음을 보는 시인의 역설이다.

정씨는 이번 시집과 함께 동화집 「항아리」(열림원 발행)도 함께 펴냈다. 그는 『시로 담을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며 『동화 쓰기는 어디까지나 시 쓰기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