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이남희 지음, 세계사 발행)영화 「혹성탈출」의 마지막 장면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원숭이들이 인간을 지배하는 미지의 혹성에 불시착한 주인공은 자신의 과거가 남아 있는 지구
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그가 발견하는 것은 반쯤 부서지고 남은 자유의 여신상이다.
많은 SF소설과 영화들이 미래를 넘겨잡고 있다. 우리는 팝콘과 오징어포를 먹으면서 이미 구시대적이 되어버린 듯한 영화관에서 그 징후들을 엿본다. 어떤 것은 현실이 되어 「토탈 리콜」에 등장했던 액정 벽걸이 TV는 벌써 시판중이다. 엄청난 속도다. 속도에 치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몰래 카메라나 자살, 경기장 난동 등으로 변형되어 연일 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영화 속처럼 불길하기만 한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가 죽었다. 『그냥, 그러기로 결심했어. 그렇게 알고 있으라구…』라고 쓰인 한 줄의 유서만 남긴 채. 희진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흉칙하게 변한 희진의 환영에 쫓겨 찬영은 클럽 골든터치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안채리라는 여자아이는 「어떤 물건을 살까 하는 상상만으로」 즐거워지는 소비와 향락에 물든 삼류 모델이다. 클럽의 화장실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또다른 살인 사건의 장소 또한 화장실이었다. 왜 살인과 구타는 화장실에서 일어나는 걸까?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안채리를 돕기 위해 찬영은 아프리카로의 여행을 계획한다. 왜 그들은 아프리카로 떠나려는 것일까?
산꼭대기에서 도시를 내려본 적이 있다. 네온 사인과 광고탑들의 불빛으로 솜씨 좋은 세공가의 손을 거친 장신구 같았다. 하지만 황홀하게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의 뒷골목은 음침하고 누군가 버린 오물이 쌓여 썩어간다. 불나방에 치명적인 것은 그를 춤추도록 유혹했던 등불이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는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는 「식인의 혹성」에 불시착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과부하에 걸릴지도 모르는 이 커다란 시스템에 브레이크를 걸고, 「이 세상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사랑이며, 자신의 능력이 미치는 한 최대한 남을 배려하고 서로 의지하라고 이 소설은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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