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헌법은 아직 「전문서적」이라 일반인들은 헌법을 구해 보기 힘들다. 이 때문인지 경제학자들은 대체로 헌법의 시장이념에 주목하지 않는다. 재벌비호론자들과 이들의 대척점에 있는 일부 좌파들이 특히 그렇다.우리 헌법은 독일 기본법과 닮은 점이 많다. 독일 기본법의 경제조항은 「만인을 위한 복지」와 「사회적 시장경제」의 기치 아래 독일 중도보수당 기민당(CDU)내의 자유주의 정파를 대변하여 전후 독일경제를 재건한 초대 경제장관 루트비히 에르하르트의 질서자유주의 시장이념을 반영하고 있다.
시장질서를 안팎에서 위협하는 내부의 독과점과 외부의 제약요인들이 도사리고 있는 새로운 역사적 상황에서 자유방임주의로는 시장질서를 지킬 수 없다. 이 때문에 에르하르트는 자유방임주의의 시대착오성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출발한다. 동시에 그는 독과점 추세를 「법칙」으로 보고 「시장의 종말」과 등치시키는 좌익 비관주의와도 투쟁하였다.
질서자유주의의 근본 확신은 독과점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독점에 대한 규제와 감독, 공급자의 수적 확대와 최적분산, 안정과 균형 유지 등 국가의 「질서정책」을 투입한다면 시장을 효율과 창의의 경쟁체제로 재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질서자유주의란 국가가 질서정책으로 「시장을 만드는」 이념(making of market)이다. 궁극목표는 「울창한 수풀 같은」 중소기업군(群)의 활동기반과 「하늘을 찌르는 거목 같은」 대기업의 기동공간이 동시에 보장되는 소비자 중심의 시장경제이다.
이 질서자유주의 정신을 수용한 우리 헌법은 119조 1항에서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는」 시장경제를 천명하고 있다. 이어서 2항은 이 시장경제를 「만들고」 그 질서를 지키기위해 국가가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분배의 유지」,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균형성장·안정정책, 독점과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독, 독점재벌과 재벌총수의 전횡 차단을 위한 규제는 국가의 고유권한에 속한다.
특히 헌법은 중산층·서민의 생활기반 안정을 위한 「적정한」 분배질서 확립과, 대립적인 경제주체간의 불화 조정을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해 소작제도 금지(121조), 중소기업과 농어업의 보호·육성, 관련 자조조직의 육성, 지역경제 육성을 통한 지역간 균형발전(123조 1∼5항), 소비자운동의 보장(124조), 기타 기본권으로서의 의무·평생교육(31조)과 최저임금·근로3권 보장, 여성·연소자의 근로및 취약집단의 생활 보호(32∼33조) 등을 국가의 「의무」로 못박고 있다.
열세한 경제주체들을 위한 이같은 일련의 보호·육성·보장정책도 「시혜」가 아니라 경제주체간 갈등조율과 평등한 경쟁조건의 보장을 통해 시장질서를 보호하려는 「질서정책」에 속한다.
정부가 헌법상에 명시된 이 질서정책적 권한과 의무를 저버리면 그것은 위헌적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나아가 금융·기업개혁 과정에서 취해진 국가의 질서정책적 시장개입을 「신관치경제」로 비난하며 개혁과 시장경제를 몽땅 재벌의 자유처분에 넘길 것을 획책하는 신자유주의, 즉 조지 소로스가 전체주의보다 더 무서운 것으로 갈파한 자유방임 시장도 위헌이다.
시장을 만들고 지킬 헌법적 권한과 의무를 이행하는 정책담당자들을 「시장의 적」으로 무고하는 사이비 자유주의자, 재벌개혁과 「경제민주주의」를 「사회주의」로 몰아 부치는 재벌비호 논객들은 헌법애국주의를 함양하든지 아니면 국적을 다른 나라에서 구해야 할 것이다. 반대로 「신자유주의 낙인」이면 마치 어떤 시장철학도 깰 수 있는 만능무기인 양 재벌몰수와 통제경제를 되뇌는 좌파들도 같은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황태연·동국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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