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만 해도 자동차문화란 말이 없었어요』통기타 문화의 기수에서 운전자의 벗이 된 「푸른 신호등」 서유석(54). 운전기사들과 함께 자동차문화를 연 지 22년. 라디오를 통해 실려오는 저음의 털털한 그의 목소리는 짜증나는 도로를 적시는 청량제다.
운전자와 함께 직설적으로 때론 은유적으로 세상사를 훑어온 서유석. 그가 처음 교통프로 진행을 맡은 해는 77년. 「가는 세월」의 인기가수로, 인기 DJ로서 잘 나가던 그의 변신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의외였다. 하지만 그는 『인기는 한순간의 거품이다. 무언가 장기적인 호흡이 필요한 것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향후 10년안에 자동차 보급이 확대돼 자동차문화의 시대가 열리고, 교통정보프로그램이 여기서 중요한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의 「푸른신호등」인생이 시작되었다.
가수생활 만큼 보람찬 세월이었다. 운전자나 안내양 등 대중교통 종사자들이 시원찮은 대접을 받던 무렵 그는 그들이 자동차 문화의 주역이라 여겼다. 그래서 언제나 그들 편에 섰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푸른신호등 체육대회. 봄에는 축구대회, 가을에는 가족운동회를 83년부터 장장 12년동안 열었다. 대회를 열면 참가자들이 1,000여명을 넘었다. 지금도 운전기사들의 차 트렁크에 축구화가 실려있는 모습을 보면 뿌뜻하다.
젊은시절은 파란만장한 반골의 삶이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막 졸업한 69년 한 주점에서 코미디언 구봉서씨의 눈에 띄어 당시 최고 쇼프로인 동양방송(TBC)의 「쇼쇼쇼」에 출연했다. 이를 계기로 갑작스럽게 통기타 가수로 주목받게 됐다. 김민기 양희은 조영남 등 통기타 전위들이 결집한 YWCA의 「싱 어롱 와이」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에게 청년문화를 전파해갔다.
서슬퍼런 유신체제가 이를 가만둘 리 없었다. 곧 무대를 잃고 떠돌다 TBC의 「밤을 잊은 그대」를 맡았다. 여기서도 젊음의 분출구를 찾는 또래의 젊은이들과 삐딱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고를 쳤다. 73년 월남파병 문제로 어수선한 정국에서 미 국무장관이 입국한 날 밤 월남 종군기자가 쓴책 「어글리 어메리칸」을 줄줄이 읽었다. 방송중에 전화가 왔다. 중앙정보부였다. 서씨는 방송을 하다말고 도망쳤다. 그때부터 3년동안 서울에 발을 디딜 수 없었다.
「가는 세월」은 이 무렵 그 자신의 설움을 달래던 곡이었다. 76년 다시 재기했을때 이 노래는 6개월만에 1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푸른 신호등」을 맡을 때도 삐딱한 멘트 때문에 78년 중도 하차, 동양방송으로 옮겼다. 80년 언론통페합으로 동양방송이 없어져 또 3년간 낭인생활. 83년 푸른 신호등을 다시 맡으면서 본격적인 교통 MC의 길로 들어섰다. 『96년 총선출마로 푸른 신호등을 그만둔 게 가장 아쉽다』
그의 이탈로 푸른신호등은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교통방송의「TBS 대행진」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 그는 이제 정치와 담을 쌓고 방송인의 길에 충실하고자 한다. 인생의 마지막 바람은 『70까지 방송을 하고 싶다』이다. 그의 반골 기질도「가는 세월」의 무게만큼 삶에 대한 경외속에 녹아들었다.
▲주요진행프로그램
73년 「밤을 잊은 그대에게」(TBC라디오)
77년 「정오의 희망곡」(MBC라디오)
77년 「푸른신호등」(MBC라디오·96년까지 진행)
97년 「TBS 대행진」(TBS라디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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