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박사학위를 가진 Y대 출신 시간강사 9년차 김모(39)씨. 일주일에 3과목 9시간 강의로 월 80만원 남짓한 벌이를 한다. 서울과 지방대학을 오가며 일주일에 사흘을 꼬박 바쳐야했던 지난 학기에 비하면, 서울소재 대학에서만 강의를 하는 요즘은 시간이 그런대로 넉넉한 편이다.하지만 강의준비 외에 연구는 손대기 어렵다. 강사료가 생계비수준에도 못미치는데다 방학기간 4-5달은 그나마 실업자 신세여서 한동안 손을 놓았던 번역일을 다시잡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을 「학문 후속세대」라고 부르지만 시간강사들에겐 멀게만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시간강사가 전임강사로 가는 전단계였지만 이제는 대안없는 「예비 실업자군」일 뿐입니다』 김씨는 하지만 강사노조에 가입할 생각은 없다. 전임교수 임용때 노조출신은 배제한다는 소문 때문이다.
전국강사노조 윤병태(尹炳兌·36)위원장은 『대학마다 차이는 있지만 시간당 2만원 안팎인 강사료로는 최소한 4개 대학을 숨쉴 틈없이 돌아다녀야만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형편』이라며 『가장 왕성한 연구활동을 할 시기에 생계에만 급급해야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손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교육부 규정집에 시간강사가 「일용잡급직」으로 분류돼 있다』며 교육당국의 무관심을 비난했다.
한해 6,000여명 가량 쏟아져 나오는 박사급 인력들이 갈 곳을 찾지못해 「학문 후속세대」가 무너지고 있다.
「창조적 지식기반국가」 「두뇌한국(BK) 21」등 장밋빛 청사진 뒤켠에서 생활고에 허덕이며 「지식 봇짐장수」노릇을 하는 시간강사들이 5만여명에 이른다. 다른 일을 시작하기엔 늦었고 교수로 진출하기도 어려운 「진퇴양난」에 빠진 이들은 학문의 상실세대이다.
시간강사는 전국에 5만4,500여명으로 5만1,300여명인 전임교원보다 3,000여명이 많다. 강사에게 의존하는 강의가 전체 강의시간의 35%를 넘어서고, 교양과목의 경우 70~80%에 달한다.
「우전좌시(右專左時)」라는 말처럼 시간강사는 전임교원과 함께 우리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한 축이지만 경제적·정책적 배려가 없어 평생을 생계의 위협속에 지내야하는 처지다. 학연과 인맥이 없으면 그나마 시간강사 자리를 얻기도 어렵다.
한국학술진흥재단 관계자는 『연간 배출되는 박사급 인력은 6,000여명에 이르지만 대학을 떠나는 퇴직교원은 1,000명 내외』라며 『현행 교육정책상 박사급 고급인력의 적체는 갈 수록 심화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겸임교수가 9시간 강의를 할 경우 법정정원의 5분의 1까지를 전임교원으로 인정하는 교육부 정책 탓에 대학들이 겸임교수 채용을 늘리는 것도 시간강사들의 진로를 가로막고 있다.
서울대 출신 시간강사 성모(31)씨는 『잠시 임용됐다 떠나는 「철새」 겸임교수들이 특정 학문분야의 후속세대인 「텃새」 시간강사의 교수영역을 침식하고 있다』며 『겸임교수제를 확대하는 교육부의 정책은 하나만 생각하는 단견』이라고 꼬집었다.
「두뇌한국(BK)21사업」도 또다른 악재. 전국강사노조 윤위원장은 『숨통을 틔워주던 박사후 연수 제도(Post-Doc)가 사실상 폐지됐다』며 『시간강사 문제에 대한 대안없이 매년 수천명의 우수 박사인력을 새롭게 배출하겠다니 그들을 누가 책임지라는 것이냐』고 분개했다.
시간강사들은 한 목소리로 강의시간당 강사료를 주도록 한 교육부 규정을 바꿔 연봉계약제 교원으로 신분을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올해 시간강사를 「외래교수」로 이름을 바꾸고 방학에도 강사료의 절반을 지급하는 성공회대가 좋은 예.
한국학술진흥재단 이종수(李宗秀)연구위원은 『분야별로 특수연구원을 만들면 학문적 성과를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법정 교수정원 부족분의 충원도 문제해결의 한 방법』이라고 밝혔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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