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집 아이에게는 잔치가 자주 있으면 좋다. 그날만은 배불리 먹을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순진한 생각이다. 없는 살림에 빚을 내 잔치를 하고나면 더 쪼들려 다음날부터 더많이 굶어야 한다.연일 잔치판이다. 하루가 멀다고 영화제가 열린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끝나니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시민영화제에 인권영화제, 사이버영화제. 국제행사를 했다하면 으레 그 속에 영화제가 들어간다. 내년부터 전주에서도 국제영화제를 열린다고 한다. 일년내내 영화제 열리는 나라. 영화제, 그것도 경쟁이 아닌 평소 구경하기 힘든 이 영화 저 영화 초청해 틀어주는 잔치성 영화제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상영문화가 척박해 평소에는 예술영화를 볼수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제4회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한창이다. 개막전부터 매진행렬, 650명의 해외 게스트, 54개국 208편의 영화, 국제영화제 수상작들의 퍼레이드, 단편과 다큐멘터리까지 감싸안은 다양성. 겉보기에는 온갖 구색을 다 갖춘 화려한 영화잔치이다. 그러나 속내를 드러다보면 얼마나 한심하고, 거품이 가득하며, 색깔이 없고, 한국영화산업과 영화문화의 발전과는 거리가 먼지 알수 있다.
Piff의 특색이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얼른 대답이 생각나지 않는다. 아시아영화 교류의 장, 한국영화의 소개의 장, 세계영화 경쟁의 장, 영화마켓 그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성격이 없으니 양으로라도 대신할 수 밖에. 그래서 그냥 거대한 영화 상영장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것도 일부 마니아들만을 위한 잔치. 극단적으로 이런 표현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Piff에 몰리는 사람은 영화관계자와 극소수 열성 마니아, 그리고 영화수입업자와 홍보업자 몇천명에 부산시민들 일부』이라고.
순수 외국 영화팬들이 부산을 찾는 경우는 거의 없다. 권위나 특색이 없고, 경쟁영화제가 아니니 해외 스타들이 오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대신 한국에 영화를 팔려는 해외제작자와 그것을 이미 수입한 한국수입사들의 거대한 홍보와 배급의 선전장이다. 마니아들에게 귀중한 예술영화 감상의 기회를 준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비슷한 영화가 극장에 걸렸을 때의 모습을 보면 그들의 열기도 거품이며, 예술영화상영문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산영화에서 난리치는 영화는 흥행에 참패한다는 속설까지 생겼다. 이런 현상은 부천판타스틱영화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런 잔치에 정부가 7억원(부천영화제는 2억원)의 거액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누굴 위한 지원인가. 예술영화상영의 토양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면 이런 일회성 잔치보다는 예술영화상영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한번 배불리 먹고 마는 잔치보다 평소 조금씩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실속없는 잔치에 빠지지 말자.
이대현기자
leed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