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백남순(白南淳)외무상은 지난달 25일 제54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21세기는 지배주의와 강권이 청산되고 모든 주권국가의 자주권이 평등하게 존중되는 세기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새 밀레니엄에 대한 전망이 엿보이는 이 대목은 북한의 2000년대맞이 준비가 국가의 생존과 자주권 확립 등 정치적인 차원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현재 북한 공식매체들은 새천년, 즉 「뉴밀레니엄」이라는 용어를 들먹이지 않고 있다. 새 천년을 준비하기 위한 이벤트도 없다. 대다수 북한주민이 새 세기의 희망을 품기보다는 굶주린 배를 먼저 해결하겠다는 욕망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또 예수 탄생을 기준으로 한 「서기」 대신 「주체」라는 연호를 쓰고 있는 탓도 크다.
하지만 정치적인 선전측면에서 북한은 2000년을 예사롭게 맞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2000년 10월10일이 북한 노동당 창건 55주년이기 때문이다. 김정일(金正日)체제가 완전히 본궤도에 오르는 시점을 창당 55주년에 맞추고, 모든 정치 일정을 창당 55주년으로 집중시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은 올 신년 공동사설부터 『모든 역량을 결집해 창당 55주년을 뜻깊게 맞도록 하자』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무너지는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인민경제법을 채택하고 농민시장을 정비하고 있다.
북한의 새천년 준비는 대남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듯하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범민련 관계자들은 지난 8월 『2000년을 통일의 시대로 맞기 위해 2000년 1월 1일 해외에서 남북한과 해외교포가 참석하는 「통일의 해 남북해외 공동맞이」 행사를 갖자』고 남측 재야인사들에게 제의했다. 이 행사를 위한 북측의 구체적인 행동은 아직 포착되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우리 재야단체에 모종의 제의를 해올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부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새 세기의 포부를 담고 이를 실현하려는 서방식 밀레니엄 구상은 없는 것 같다』며 『북한은 정치적인 차원에서 새 세기를 언급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이영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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