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주사파 학생운동의 이론적 대부 김영환(金永煥·36)씨는 18일 본사 13층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주체사상은 정치적 선동을 위한 도구일 뿐 사회변혁의 패러다임으로서 기능은 오래전에 상실했다』며 『아직도 상당수 사람들이 미몽(迷夢)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지난 7일 검찰의 공소보류로 풀려난 후 언론접촉을 피해온 김씨는 이날 1시간 30분가량 인터뷰에서 사상전향 동기와 북한 방문시 행적 등 검찰 반성문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내용을 상세히 공개했다.
-사상전향의 동기는.
『사실 생각이 바뀐 것은 89-90년 무렵부터다. 동유럽의 붕괴를 지켜보며 과거방식의 사회주의로는 안된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사회이론, 새 패러다임이 필요한데, 북에 연구성과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들과 토론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91년 북에 가서 주체사상을 연구하는 철학박사들과 만나 토론을 했으나 실망만 했다. 나름대로 사고의 깊이도 있고 지식도 있는데 눈치만 보는 듯했다. 수령론에 대해 질문을 하자 본질을 벗어나 빙빙도는 답변만 했다.
김일성도 마찬가지였다.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만든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는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북한에서 사회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기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북한의 경직성과 경제적 궁핍은 이미 간접 경로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북한에 가 보고서야 깨달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새로운 게 아닐 지 몰라도 당시에는 뚜렷한 증거없이 얘기만 무성한 상태였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심을 갖고 있다가 직접 보고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김일성 면담시 어떤 얘기를 나눴나.
『김일성은 남조선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주체사상을 전파해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 이란 혁명을 거론하며 동조세력이 1,000만명만 되면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만주에서 투쟁할 때 「손목사」라는 사람이 도움을 줬다며 지위나 신분을 가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도 했다』
-일부 비판자들은 극단적인 사상전향에 대해 변절이라고 비난하는데.
『90년대초부터 사상전환을 해가는 과정에서 글을 많이 썼다. 공개되지 않은 것이 70%나 되지만, 이 과정을 공유한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변절이라고 얘기하지는 않는다.
변절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 과정을 전혀 모르고 하는 얘기다. 내 생각이 바뀐 것은 스스로의 사색과 연구의 결과일 뿐이다』
-대학 동기이자 한때 동지였던 하영옥(河永沃·36·구속)씨는 끝내 전향을 거부했는데.
『안타깝고 화도 난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전향을 못하고 있다』
-황장엽씨를 만났나.
『국정원에서 잠깐 만났다. 현시점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김정일 정권 타도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나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신뢰를 나타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현 시점에서 사회발전의 이론과 철학을 연구하고, 김정일정권 타도와 북한민주화를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김상철기자
sc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