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대외적으로 핵 선제공격권을 선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8일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핵무기의 선제 사용을 명기한 「신(新)군사 독트린」을 준비중이며 확정될 경우 대통령령으로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미국의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안 부결로 흔들린 세계의 핵질서를 다시 혼돈에 빠뜨리는 등 국제안보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아사히(朝日) 신문이 최근 입수한 이 독트린의 초안에 따르면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과 관련, 『재래식 전력에 의한 침략을 받을지라도 자국과 동맹국의 안전을 위협할 경우 핵병기를 사용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혔다. 이는 적이 핵무기를 사용할때에 한해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종래의 핵사용 방침을 번복, 핵 선제공격권의 회복을 선언한 것이다. 이는 핵 선제공격의 포기, 군사력 감축 등을 표방했던 93년의 군사 독트린을 뒤엎은 것이다.
독트린은 이와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미국을 잠재적인 적(敵)으로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소보 공습을 주도한 나토와 냉전후 「유일 패권국」으로 등장한 미국을 러시아의 국가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규정, 서방에 대한 대항(對抗) 자세를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독트린은 또 이같은 위협요소를 막기위해 독립국가연합(CIS) 집단안보조약의 강화를 통한 가맹국의 전력 정비, 군비 현대화 등을 제시하는 등 「러시아 군사 블럭」의 재편성을 주창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를 위해 내년도 국방비를 당초보다 1.5배 증액키로 결정했다. 독트린은 특히 『각 지역의 군부대 재편 등은 인접 국가와의 안보상황에 따를 방침』이라고 적시했는데 이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일본과의 북방영토 협상,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위(TMD) 체체 개발, 한반도 문제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를 의미할 수 있다고 아사히는 지적했다.
러시아의 이같은 움직임은 무엇보다 군부내 강성 기류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냉전후 군비 삭감으로 극도로 위축됐던 러시아군 지도부는 올들어 나토의 코소보 공습, 체첸사태 등이 잇따르자 군사력 재강화를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또한 미국과의 핵협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계산도 깔려있는 것같다. 최근 CTBT 비준안을 부결함으로써 핵지도력을 스스로 거부하는 자충수를 둔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72년 양국이 조인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협정 개정에 대한 동의를 받아야하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이를 노려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경제지원 등 부수이익을 챙기려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러시아 군사독트린은 군비 확충이 사실상 어려운 국내 경제 현실과 「제2의 냉전」을 초래한다는 국내외적 비난 압력을 고려하면 앞으로 유화적방향으로 변동될 여지가 있다. 러시아는 코소보 평화유지군 파견 비용, 체첸전 전비(戰費)를 마련하느라 극도의 경제적 긴축을 겪고 있다.
이고르 라디오노프 전 러시아 국방장관은 이와 관련, 『무책임한 민중선동』이라고 혹평하고 『러시아가 핵무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지만 이는 생사의 기로에 있는 극단적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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