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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칼럼] 내 마음속의 돌도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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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칼럼] 내 마음속의 돌도끼 하나

입력
1999.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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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소리 치고 결혼했다. 돌도끼 하나와 가죽팬티만 가지고도 원시인들은 잘 살았다고. 유인물과 짱돌로 군사정권의 조직화된 폭력과 싸우던 386의 오기였는지 모른다.원시인도 동굴은 있어야 한다. 이리 저리 빚 얻어서 서울 아닌 곳에 둥지를 틀고, 빚 갚고 융자 상환하느라고 허리가 휘었다.

그리고 십년. 학부형이 되어 가정환경조사서의 빈 칸을 메꾸어야 한다. 자가용, 피아노, 컴퓨터, VTR. 아직도 이런걸 조사하나? 내가 어릴 때 항목하고 많이 바뀌었네. 그때는 전화기, 텔레비젼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빈 칸을 채우다보니 놀랍다. 아니, 뭐가 이렇게 많지?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어느새 이렇게 많이 가지게 되었을까.

구로동 벌집에서, 우중충한 반지하방에서 추위를 견디며 사회 변혁을 꿈꿀 때 안정된 생활은 사치였다. 30평이 넘는 아파트에 사는 것은 민중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한 사람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은 면도기를 포함해서 50가지가 채 안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일까. 그래도 되는 것일까.

소유와 소비의 행동양식에 꿈과 이상이 질식해 버린 것은 아닐까? 거부할 틈도 없이, 아니 거부할 생각도 없이 길들여지고 합리화하며 실직 가정의 굶주림도, 부도덕한 부의 세습에도 무감각해진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볼 일이다.

정의를 갈구하던 세대는 세월이 흘러 자라나는 어린 자녀에게 바르게 살라고 가르치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는 모두 생활인이 되어 사회와 기업의 중추로 열심히 살아가면서 분노를 넘어서 거부할 수 있고 감시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 그만큼 전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공허한 전략적 테제보다도 참여와 관심으로 보다 나은 세상을 이루는데 동참하는 것이다. 그것이 흘러간 청춘에 부끄럽지 않은 내 마음 속의 돌도끼일 것이다.

/김경호·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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