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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이전에 성이있었다] 동양철학서 본 '성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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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이전에 성이있었다] 동양철학서 본 '성의 즐거움'

입력
1999.10.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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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성 관련 서적이 범람한다. 섹스 자체를 다룬 책, 성 학설을 다룬 책, 남녀의 성적 차이를 다룬 책 등, 홍수다.동양철학자 윤천근(44·안동대 국학부 동양철학과) 교수의 「섹스 이전에 성이 있었다」는 이런 류의 책 중에서 단연 눈에 띈다. 동양철학의 입장에서 성이론서가 나오기는 처음이다. 성, 보다 정확히는 성적 즐거움의 추구를 동양학의 시선으로 옹호한다. 인접 서구학문의 성과와 최근 신문기사들까지 원용하고 있다.

서술 태도는 물론, 어휘가 참 솔직하다. 이 솔직성은 어디서 나오는가? 「성관계란 발가벗은 두 사람이 이뤄내는 관계며, 남성과 여성이 원시의 자극을 주고 받는 것이므로 문명이나 문화의 체면치레가 개재될 여유가 없다」고 윤교수는 책에서 밝힌다.

논의의 실제적 출발점은 오르가즘. 성과 쾌락의 추구, 오르가즘에 이르는 길, 나의 오르가즘·남의 오르가즘, 오르가즘과 자위행위, 동성간의 성과 오르가즘 등 오르가즘을 화두로 한 일련의 논의가 이어진다. 쌍방의 절정감을 위해서는 남성이 여성의 시간표와 맞추어 주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간한국 등 주요 시사지에서 발췌한 관련 기사들이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그가 섹스의 의미를 캐는 데 주력하게 된 것은 인류사적 해방의 최근 단계가 섹스인 터에, 동양 철학도 이제는 이를 적극 규명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책은 인류사를 「욕망의 조절」로 규정, 산업화 덕분에 경제적 욕망이 해결된 지금은 성적 행위의 자유에까지 와 있다고 파악한다. 20세기는 「대중을 발견해 낸 시기」라는 것이다. 섹스는 그들의 공통 분모다.

책의 생생함은 윤교수가 3년째 생물학과와 공통으로 이끌어 오고 있는 2학점 짜리 교양 강좌 「성과 사랑」의 경험 덕분.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하자는 거죠. 교수는 맨 뒤에 총평만 하죠』 윤교수의 개방적 태도 덕분에 이 강좌는 안동대 최고의 인기 강좌가 됐다. 학생들, 『즐기는 것은 생명의 자연스런 표현 아닌가요?』. 윤교수, 『맞다. 그러나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도덕이 필요하다』

책은 도가사상과 유학(퇴계학)을 두 중심으로 하는 그의 학문적 연장선에 있다. 이미 논문 「도교의 성, 절제와 향유_도교를 중심으로 본 중국의 성의학」 등을 통해 방중술을 중심으로 하는 동양의 성의학에 대한 연구를 진전시켜 왔다.

책은 성을 쾌락이나 향락이 아니라, 자연스런 본성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한국어로 번역된다면 누구든 멈칫거릴 「섹시하다」는 말이 방송에서도 서슴지 않고 쓰이는 데서 우리의 웃자란 성의식을 본다고 책은 말한다. 이 책은 대미를 결혼 제도에 할애, 최근 세계적인 추세인 가정의 위기는 부부간의 솔직한 성적 쾌락의 방식을 둘이서 찾아내려는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맺었다.

윤교수는 책에다 그의 체취를 남겼다. 본문 시작 전 아무 설명도 없이 주어져 있는 한 편의 풋풋한 시가 그것. 자신이 고려대 철학과 1년 시절 썼던 시 「소녀에게」다. 그는 『짝사랑에 들떠 있던 나의 순수했던 모습을 이 책에 바치는 심정』이라고 이 별스런 헌시에 대해 설명했다.

앞으로는 하늘·돌·나무 등 자연숭배 전통속에 숨은 우리의 정신을 문화의 어법으로 풀어내는 데 진력할 생각이다..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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