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재앙이다. 첨단의 인명살상 무기가 개발된 이래 현대전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미 AP통신의 사실확인 보도로 널리 알려진 6·25전란중 미군에 의한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은 전쟁의 참상을 웅변하고 있다. 피아(彼我)의 식별이 곤란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아군측에 의해 저질러진 만행이라는 점에서 우리들의 인식체계를 극히 혼란속에 빠지게 한다.노근리사건 보도후 한국전쟁중 발생한 미군에 의한 주민학살 주장이 줄을 잇고 있어 우리를 아연케 한다. 제법 구체성을 띠고 있는 주장만도 벌써 10여건에 이른다. 북한군의 남침을 저지해 남한을 공산화 위협으로부터 구출하러 왔던 미군이 마치 야만인으로 비쳐지고 있는 현실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지방자치단체나 행정자치부에서 양민피해 신고접수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미국도 스탠리 로스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를 한국에 보내 우선 노근리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한 「양자조정기구」라는 비상설기구의 설치에 합의했다. 만시지탄의 결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양국 공히 이 문제로 인해 전통적인 선린관계가 손상돼서는 안되겠다는 상황인식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가운데 AP통신은 또 참전병사들의 증언 등을 토대로 50년 8월3일 미군이 후퇴도중 낙동강의 전략요충인 왜관교와 득성교(구 고령교)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수백명의 피란민을 숨지게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북한군의 진군을 저지하기 위해서 였다고는 해도 많은 인명이 몰린 다리를 폭파, 수백명이 떼죽음 당했다면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한미 양국정부가 지체없이 이런 주장들에 대한 사실여부를 밝히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다해 줄 것을 당부한다. 또 필요하면 배상 등 사후처리에도 추호의 소홀함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마치 여론에 떼밀려 마지 못해 대책기구를 구성하는 등 소극적인 자세로는 이번 일련의 사건들을 해결하기 어렵다. 괜히 늑장을 부리다가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물론 사안중엔 폭로분위기에 편승해서 내용이 부풀려지는 등 정확지 못한 주장들도 일부 포함돼 있을 개연성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검증작업이 이뤄져야 한다. 한미 양국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금가게 하는 이같은 주장들은 사실의 진위여부를 낱낱이 가려내야 마땅한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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