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가는 부자없다』는 옛말이 현대 한국사회에는 들어맞지 않는 것 같다. 4대 재벌그룹중 이미 두 곳이 할아버지-아버지-손자로 이어지는 승계를 마쳐 세계적으로 드문 철밥통 재벌가문의 신화를 이루고 있다. 또다른 그룹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변칙증여 등을 통해 사실상 세습(재산) 끝내기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30세를 갓 넘긴 이 상속자가 경영권까지 승계받을 지는 두고봐야 겠지만 수십만 종업원들에게는 명실상부한 「세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개도국의 재벌해체는 시기상조다』 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태런 캐너 교수와 크리시나 패일푸 교수가 최근 이같이 주장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지 8·9월호에 공동기고한 논문에서 이들은 한국을 직접 거명하며 금융 고용 등 시장인프라가 미비된 나라에서 재벌해체는 부작용을 초래, 국가경제가 뒷걸음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 논문이 신문등 언론매체를 통해 국내에 일제히 소개되자 여러갈래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우선 DJ정부의 몰아치기 개혁과 여론의 삐딱한 사시에 영 기분이 상했던 재벌오너들은 모처럼 만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고, 전경련측은 『설득력있는 지적으로 정부가 귀담아 경청해야 한다』며 고무된 모습 이었다고 한다. 연이어 송병락(宋丙洛)서울대부총장이 한 조찬강연에서 『기러기군(群·재벌)이 흩어질 경우 독수리(외국거대기업)들의 밥이 된다』며 재벌의 선단식 경영을 옹호, 반대론자의 지상반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일본학자들은 「가족에 의해 봉쇄적으로 소유되는 다각적 사업경영체」를 재벌로 규정한다. 이런 의미의 재벌이 사회민주주의 체제인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한 국가의 기업리스트 상위를 재벌들이 「독점」하는 나라는 전무하고 더욱이 변칙 등 당당하지 못한 방법을 통한 재벌세습 사례는 근래들어 찾아볼 수 없다.기업지배구조에 일관된 모범답안이 없는지 모르지만 도덕성에는 분명 모범답안이 있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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