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0일 : 『등기소를 방문해 등기시 필요한 서류를 물어 봄. 개인이 등기하겠다고 하자 소 닭 쳐다보듯 함. 서류를 주며 구청에 가서 물어 보라고 함』9월21일 : 『구청 방문. …직원이 모르는 일이라고 함. 등기소에 가서 문의하라고 함. 한술 더 떠서 「아줌마가 알아서 등기하겠다고 했으니 공부해서 작성하세요」라고 한다』
집을 사면 누구나 해야하는 등기(登記). 보통은 법무사 등에게 맡기는 이 일은 혼자 힘으로 하는 과정에서 온갖 수난을 치른 한 주부의 「등기일기」가 요즘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일기의 주인공은 인천 부평에 사는 주부 김순희(金順希·33)씨. 김씨는 6월 말 지금의 아파트에 입주한 뒤 9월8일부터 30일까지 직접 소유권 이전등기를 하기위해 구청과 등기소를 9차례나 오가면서 겪었던 모진 고생을 일자별로 정리, PC통신 천리안에 올렸다. 김씨는 20만-30만원으로 결코 적지않은 등기 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소박한 생각에서 직접 등기에 나섰다고 밝혔다. 하지만 23일간의 과정은 「싸움의 연속」이었다. 공무원들에게 철저히 무시당하고 구박만 받을 뿐이었다. 등기 신청 서류들도 너무 복잡해 질려 버렸다.
등기에 필요한 서류는 무려 13가지. 김씨는 열심히 다리품을 팔아 서류를 하나하나 챙겼으나 「부동산과세시가표준」은 구청과 등기소를 여러차례 쫓아다녀도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등기소에서 서류를 가져와 구청에 비치된 기준시가표준액표에 따라 일일이 계산해야 하는데 그 절차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었다.
더욱 김씨를 괴롭힌 것은 구청과 등기소 공무원들의 불친절. 법무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등기하려는 김씨를 돕기는 커녕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구청에선 「등기소에서 알아보라」, 등기소에선 「구청에 문의하라」로 서로 떠넘기기도 여러차례. 『아줌마가 뭘 안다고 직접 등기를 하느냐』『법무사가 잘 아니 가서 물어보라』는 식의 핀잔도 곁들여졌다. 하도 화가 나서 법원 행정처에 전화를 걸었으나 『일반인이 쉽게 등기를 할 수 있게 만들면 법무사나 변호사같은 전문인들이 왜 필요하느냐』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결국에는 김씨는 법무사 사무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부동산과세시가표준」과 「국민주택채권액」을 작성해 겨우 등기를 마칠 수 있었다.
김씨가 이렇게 등기를 마치는데 든 비용은 단돈 900원. 물론 수입증지, 수입인지, 채권 등록세 등 등기접수과정에 들어가는 돈은 제외됐다. 김씨는 『구청과 등기소에서 「부동산과세시가표준」만 계산해 채권액만 결정해주면 개인이 등기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며 『행정기관의 불친절과 관료주의가 어느 정도인지 절감했다』고 말했다. 9월말부터 천리안 주부동호회(go jubu)에 게재된 김씨의 「등기일기」는 이미 조회건수가 1,500건에 이르고 이를 본 네티즌들의 격려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선년규기자
ngsun@hk.co.kr
■등기일지 요지
[등기일지 요지] 구청 3번. 등기소 5번 퇴짜
1999/10/15(금) 19:48
주부 김순희(33·사진)씨가 인천 부평구 아파트에 입주한 것은 올 6월30일. 이후 9월8일부터 30일까지 구청, 등기소, 은행 등을 오가며 등기를 직접 신청했다. 김씨는 이 과정에서 겪은 고초를 천리안 주부동호회 게시판에 낱낱이 기록했다. 등기일기를 읽어보면 우리나라 등기 업무의 현주소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등기일기의 요약.
9월8일 = 아파트 시공사인 H사에 등기시 필요한 서류를 문의. 「소유권이전협조요청서」등 3가지 서류를 가지고 오라고 함.
중도금 대출을 받은 은행에 「소유권이전협조요청서」를 요구. 개인에겐 떼줄 수 없다는 답변.
9월20일 = 은행을 다시 방문해 약관 설명을 요구. 설명 못함. 언론사에 제보하겠다고 하자 담당과장이 『담당자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서류를 발급해줌.
등기소 방문. 등기시 필요한 서류 13종을 메모해 옴.
9월21일 = 구청 방문. 토지대장, 토지가격대장 등 3종의 서류 발급받음. 「부동산과세시가표준」을 문의하자 등기소에 알아보라고 함.
등기소 2차방문. 「부동산과세시가표준」문의. 구청의 일이라고 함.
9월22일 = 구청 2차방문. 「부동산과세시가표준」다시 문의. 일부 계산해주고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함.
등기소 3차 방문. 「부동산과세시가표준」을 문의했더니 책자를 내주고 계산해오라고 함.
법무사 사무실에 문의하자 등기소에서 해줘야 할 일이라며 설명해줌.
9월27일 = 구청 3차방문. 「부동산과세시가표준」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함.
9월30일 = 등기소 4차방문. 등기신청서 내용부실로 반려됨.
법무사 사무실에 문의. 직원의 도움으로 수입인지 등을 붙이고 서류를 완성.
등기소 5차방문. 서류 미비로 다시 퇴짜당함.
등기소 6차방문. 서류 보완해 다시 접수.
10월4일 등기권리증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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