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기덕(39). 끈질기고 집요하다. 세편의 저예산 영화로 그가 끌어 모은 관객은 5만명이 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이번에는 제일제당이 제작비를 대고 명필름이 제작하는 「섬」을 만들 기회가 주어졌다. 이달초부터 촬영에 들어갔다. 물론 이번에도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을 한다. 제작비는 5억원 내외. 유명 배우 한 명의 개런티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한국 저예산 영화에 또 하나의 기회이다.그는 96년부터 해마다 한 편씩 선보인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에서 보여주었던 밑바닥 인생들의 생명력보다 더 질긴 그것을 가졌다. 『옛날 기억들이 마치 콜라주처럼 머리 속에 맴돌고 있어 그것들을 하나둘씩 채집해 시나리오를 쓴다』는 그는 제작자를 한 번 물면 그냥 두지 않는다. 마치 악어처럼. 그래서 집요하게 다양한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항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항복 속에는 언제나 「김기덕」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 가능성은 무엇일까.
『반추상화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영화 「섬」은 애인을 살해한 전직경찰 현식(김유석)과 낚시터에서 음식과 몸을 파는 여자 희진(서정)의 사랑과 집착을 그린 성 심리극이다. 집착의 상처에서 도망간 남자가 고립된 장소에서 또 다른 집착의 대상이 되는 에로틱 심리극이다.
영화는 섹스 장면보다는 충격적 영상이 많다. 허벅지를 찔러 자살을 막는 여자, 또다시 낚시바늘을 입에 물고 자살을 시도하는 남자 등 충격적 내용은 노랑, 파랑 등 원색의 화면 위에서 더욱 증폭된다. 신음이나 비명 소리 외엔 아무런 대사가 없는 여주인공의 암울한 이미지는 영화가 스토리 보다는 미장센(화면구성)을 통해 비언어적 언어를 구사할 것으로 예견케 한다. 영화는 70만평 규모의 경기 안성의 고삼저수지를 배경으로 한달반 가량 촬영을 마치고 내년 초 개봉한다.
줄거리만 본다면 상업영화로서의 흥행요건이 다분하다. 그러나 감독은 『영화의 뼈대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주인공 김유석은 「강원도의 힘」, 서정은 「박하사탕」에 출연한 신인급 연기자들. 「악어」의 주인공 조재현과 「파란대문」의 장항선이 의리출연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눈길을 끌만한 인물이 없다. 『어떤 스타가 이들보다 헌신적으로 연기할 수 있겠느냐』 는 감독은, 바로 이런 이유로 신인을 고집하는데 예감이 좋다. 돈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가 잘되면 더욱 신인들을 쓰겠죠. 오히려 영화가 안되면 주연배우를 보고 극장을 찾는 우리 현실에 굴복할지도 모르지요』
『서른 이전의 삶은 별로 알리고 싶지 않다』는 감독은 어느 미술대학을 나와 파리에서 오래 생활을 했던 사람. 그가 가진 유일한 재산은 가능성과 근성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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