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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일기] 안방 찾아간다...'애증의 세월' 드라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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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일기] 안방 찾아간다...'애증의 세월' 드라마로

입력
1999.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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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기는 시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변하는 날들의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못된 성질이 솟아 그분의 눈에서 눈물이 나게 했고,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대로 저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 힘들게 했습니다. 그렇지만 23년의 세월이 흐르고 나니 서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좋은 점만을 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습니다…머잖아 저도 시어머니가 되겠지요…』 (95년 김민희의 「고부일기」 서문)『「고부일기」의 주인공은 나였지만, 이 책의 주인공은 며느리입니다. 며느리를 처음 맞아들이면서 워낙 시원치 않게 생겨서, 저것을 언제 내사람으로 만드나 몸을 달았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24년 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박힌 내 짝의 이야기를 적어보았습니다』 (96년 천정순의 「붕어빵은 왜 사왔니」)

『「고부일기」와 「붕어빵은 왜 사왔니」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고부 사이에 우스꽝스런 악한으로 등장하는 아들을 보았을 것이다. 그 아들이 바로 나다.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것은 새우이듯, 고부 싸움에 등 터지는 것은 남자다…나는 고부 사이를 부드럽게 하는 방법이 뭔가를 찾아 25년 동안 헤맨 사람이다』 (97년 한윤수의 「내 속 썩는건 아무도 몰라」)

알만한 사람은 이 세 사람을 다 안다. 95년부터 1년 간격으로 마치 나도 할 말 있다는 듯 차례로 나온 이 책으로 세 사람은 유명해졌다. TV에도 출연했다. 김민희(50)는 며느리, 천정순(78)은 시어머니, 한윤수(51·출판사 경영)는 남편이다. 대학생 아들 둘과 함께 한 집에 산다.

서울의 북서쪽 끄트머리 구파발을 지나 삼송리에 이르러 배뱅이 고개를 넘으면 이들이 지지고 볶으며 살아 온 집이 있다. 고부 사이로, 부부 사이로, 그리고 부모자식 사이로 교차했던 27년 간의 애증의 세월.

■책에서 드라마로

한 가족이 일상에서 겪는 갈등이 화해로 나가는 잔잔한 과정이 녹아 든 이 세 권의 책이 드라마로 재탄생해 시청자를 찾아간다. SBS가 17일 첫 방송하는 일요 아침드라마 「달콤한 신부」(박현주 극본·유철용 연출). 시트콤(Situation Drama·시추에이션 드라마) 형식이다.

드라마의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출연진이 책 속 가족의 실명으로 등장하고 촬영 장소도 실제 이들의 집과 동네다. 대신 녹화를 위해 방송사가 집을 깨끗하게 단장해 주었다. 50~100회로 기획된 「달콤한 신부」는 모처럼 건강한 가족드라마를 지향한다. 『성격이 다른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재창조하면서 감동과 사랑이 묻어나는 가족 드라마의 전형을 만들겠다』는 게 공영화 CP(책임연출)의 기획 의도다.

■촬영 현장에서

12일 드라마 1, 2회 분 녹화 현장. 『어허 나는 쟁반을 품위 없게 들고 음식 을 나르지는 않았는데』 시어머니 천씨가 안절부절 못하다. 강부자가 낚시터(천씨는 실제로 낚시터를 운영했다)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는 장면 촬영을 보다 못해 털어 놓는 푸념이다. 실제 천정순과 극중의 천정순은 금세 친해졌다.

『연기에 권위가 있는 강부자씨가 내 역을 맡으니 너무 좋아요』 『천선생님은 엄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 같아요』

며느리 김민희씨는 자신의 역을 맡은 김지수에게 말한다. 『시어머니에게 못생기고 키작다고 구박 들은 평생의 한을 예쁜 김지수씨 때문에 풀겠어요』 김지수의 응답. 『어려움이 닥쳐도 항상 웃으며 극복해가는 책 속의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잘 웃지 못하는 제가 잘 해낼 수 있을 지 걱정이네요』 완연한 가을날 잔디밭에 앉은 두 사람은 어느 사이 정다운 언니 동생이 됐다. 『제가 결혼할 때 시부모가 반대하면 김민희씨처럼 눈물만 흘리면 되나요?』 김지수가 묻자 『눈물 속에 진실과 사랑이 담겨 있어야지요』 대답이 이어진다.

김민희씨 가족은 캐스팅에 대만족이다. 김씨는 남편 한윤수 역으로 출연하는 김상중도 든든하다며 신이 났다. 그리고 항시 구수하고 건강한 역을 맡는 강남길, 김창완, 송채환 등이 드라마에 함께 출연해 주어 좋다고 했다.

녹화장에 나온 스태프에게 시원한 막걸리를 대접하느라 분주한 원작자 김씨가족. 자신들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촬영되는 것이 신기한 듯 지켜 보면서 『이 드라마가 가족 구성원들의 다툼과 화해, 갈등과 평화를 잘 그려 주면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시어머니 천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귀에 대고 엉뚱하게 말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 하고 싶은 한마디가 있는데, 그것은 『며늘아가야, 수고했다』라는 말이라고. 며느리 김씨는 이 말을 전해주자 『남편도 하나지만 시어머니도 한 분』이라며 얼굴을 붉힌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고부일기' 연애..결혼..다툼..화해..진솔한 사연

80년대 출판사 「청년사」 를 운영하다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수배를 받았던 한윤수씨. 그는 95년 다시 「도서출판 형제」를 차리고 모 신문사의 여성 편집위원을 찾아갔다.

『선생님의 글을 저희 출판사의 첫 책으로 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 편집위원은 고개를 저으며 『제 글은 신문사에서 출판하기로 예약이 되어 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 『집에 좋은 필자가 있는데 뭘 걱정이세요』

「고부일기」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 편집위원은 지금의 한국일보 장명수 사장. 한씨의 아내 김민희씨는 「장명수 칼럼」의 대단한 애독자였다. 독자로서 600여 차례 편지를 보냈고 그 사연이 「장명수 칼럼」에 여러번 소개됐다.

한씨는 집에 돌아온 길로 아내에게 글 써놓은 것을 내 놓으라고 닦달했다. 낡고 두꺼운 공책. 「나의 고부일기」라는 제목이 붙은 일기장이었다. 거기에는 고졸(청주 여상) 출신이고 키도 작은 김씨가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온 잘 생긴 한씨에게 구애하던 연애담부터, 시어머니가 결혼을 반대해 눈물로 수많은 세월을 보냈던 이야기, 시어머니에게 대들다 남편에게 쫓겨난 사연 등이 애절하고 진솔하게 적혀 있었다.

남편 한씨는 출간을 결심했다. 아내에게 일기를 다시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어머니 천정순씨를 온천에도 보내고 미국의 여동생에게도 두달간 「유배 관광」을 보냈다. 95년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고부일기」다. 김씨의 글솜씨는 84년 전국 주부백일장 산문부 1등, 86년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우수작 당선 경력이 말해준다. 김씨의 친정아버지는 북한의 인민배우인 김세영. 모녀는 85년 북한의 고향방문단이 서울에 왔을 때 35년 만에 상봉, 많은 사람들을 눈물짓게 했다.

『얘, 나라고 할 말이 없는 줄 아니?』 하면서 그 일년 후 나온 책이 시어머니 천정순씨의 「붕어빵은 왜 사왔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책이 나온 후 억울해서 당장 반박문을 써야겠다는 듯 대학노트를 몇 권 사다 놓고 8개월 동안 끙끙 앓며 글을 썼다 한다.

어디 세상에 내 놓아도 잘 난 아들이 못생기고 키작은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나설 때의 실망, 아들이 임관할 때 소위 계급장을 며느리가 달아줄 때의 질투감, 그리고 몸이 약한 며느리에게 일 못시키고 혼자 낚시터를 운영하면서 미워했던 마음, 가족신문 「거북이」에 얽힌 사연,「고부일기」가 나온 후 지방방송사에 초대받아 두 사람이 호텔에 들었다 붕어빵을 사 먹은 이야기 등이 정감있게 실려있다. 일본 오사카에서 여고를 나온 천씨의 글 실력도 며느리 못지 않다.

남편이라고 할 말이 없을까? 어머니와 아내의 틈바구니에 끼어 마누라 편을 들자니 어머니가 울고, 어머니 편을 들자니 아내가 서운해 하는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를 털어 놓고 싶었다. 그래서 97년 「고부일기」의 완결편인 「내 속 썩는 건 아무도 몰라」가 나왔다.

/배국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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