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은 좋아서일까, 부담이 없어서일까? 옆 자리를 피하는 것은 의식해서일까, 싫어서일까. 때로 오해는 사랑을 만든다. 무심한 눈빛은 은밀한 발언, 아무렇지 않은 손길은 감출 수 없는 사랑의 표현. 오해의 수렁에 한 번 빠지면 사랑이 깊어지게 마련이다.그러나 때론 말할 수 없는 사랑이 있다. 그런 사랑을 전하는 방법은 말 대신 글이다. 진가신(陳可辛·영어 이름 피터 첸) 감독의 「러브 레터」는 사랑의 편지가 일으키는 아름다운 오해에 관한 영화이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느날 내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을 때 무릎이 벗겨져 가슴을 쓸진 않았는지요. 우린 어울리지 않는 짝이지만 당신이 아니라면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요. …신발 끈을 묶거나 오렌지를 벗기거나 자동차를 몰 때도, 당신없이 혼자 잠드는 밤에도 난 당신의 것이예요」.
겉봉이 없는 로맨틱한 편지를 받아든 서점 주인인 이혼녀 헬렌(케이트 캡쇼). 세상엔 편지를 보낸 단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두 종류 밖에 없다. 뉴잉글랜드 바닷가 마을 로브롤리. 누구네집 밥숟가락이 몇개인지 훤히 아는 동네에서 편지를 보낸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동네 친구인 소방관 조지(톰 샐릭)는 유력한 「용의자」. 하지만 첫 번째 사건의 주인공은 서점 아르바이트생 쟈니(톰 에버릿 스콧). 대학생 쟈니는 『포도주를 가져오라』는 헬렌의 말이 슬쩍 흘린 편지를 읽어 보라는 암시라고 생각한다. 30대 후반의 이혼녀와 스무살 대학생은 편지 때문에 격정적인 연애를 시작한다. 편지는 그러나 주인을 바꾸어 돌아다니며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형편없는 남자를 로맨티스트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누가 보낸지 모르는 단 한 통의 편지로 마을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만다.
「첨밀밀」의 홍콩 감독 진가신이 할리우드로 터를 옮겨 만든 첫 영화다. 그가 사랑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음을 상기시키는 대목이 많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소한 일에도 흥분하기 쉽다. 멋지게 보이려고 웃통을 벗은 쟈니에게 「냄새가 난다」며 면박을 준 헬렌은 그의 집으로 찾아가 사과의 말을 전한다. 당연히 앞뒤가 맞지 않는 횡설수설. 쟈니는 벽 뒷편에서 살그머니 다가와 헬렌의 손을 잡는데 손가락과 손가락을 엇갈려 낀 클로즈업 장면은 어떤 에로틱한 장면보다 감각적이다. 온 마을 사람들이 편지를 낭송하는 환청 부분도 재치있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는 게 사랑. 헬렌과 밤을 보낸 쟈니가 남겨 놓은 메모는 「당신을 사랑해요. 내 차보다 더」. 헬렌은 갸우뚱한다.
영화 속 사랑은 모두 금기의 사랑이다. 이혼녀는 대학생과 사랑을 나누고, 손녀까지 둔 할머니는 나이들어 옛 「여자」와 동거를 시작하고, 첫사랑을 못잊는 남자는 그녀를 염두에 두고 이혼을 실행에 옮긴다. 그러나 연애 편지 한통으로 미쳐버린 마을에 「금기」란 없다. 하긴 달콤한 한통의 편지와 루이스 바칼로프의 탱고, 쳇 베이커의 「I've Never Been In Love Before」같은 스윙 재즈만 있다면 그 어떤 사랑이 아름답지 않을까만은. 그런데 편지는 누가 보냈을까. 16일 개봉. 오락성 ★★★★ 예술성★★★☆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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