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통신의 노근리사건 보도를 계기로 전국에서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한 유사한 양민학살이 있었다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이고 총체적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지금까지 제기된 양민학살 의혹은 노근리 양민학살 경북 칠곡군 왜관교·고령군 덕승교 폭격 전북 익산역 폭격 경남 사천시 곤명면 조장리 기총소사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2리 폭탄 투하 경남 마산 진전면 곡안리 총격 경남 마산 창녕읍 여초리 기총소사 등 10여 건에 이른다.
이중 노근리 양민학살사건에 대해서는 13일 한미 양국이 진상조사와 협의를 위한 비상설기구로 「양자조정그룹」을 구성키로 합의하는 등 조사에 구체성을 띠어가고 있지만 다른 사건들의 경우 조사 방법에 대한 논의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은 13일 노근리 사건 외에 다른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진상조사 의지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일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이미 지시한 대로 노근리 학살사건과 함께 당연히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이같은 언급은 실무적 뒷받침이 결여된 채 원칙적 입장 천명에 그치고 있어 실천 의지에 의구심을 갖게 하고 있다.
실제로 전북 익산시만 11일 시청 상황실에 피해창구를 개설, 주민들로부터 피해사례를 접수하고 있을 뿐 나머지 자치단체의 경우 사건의 접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의 노근리사건 진상조사대책단 관계자도 『미군 전사에 명백한 기록이 남아 있고 가해자의 증언이 확보된 노근리 사건 조차 실제 조사에 착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다른 사건의 경우 신경쓸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노근리 사건을 우선 조사, 양민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의 효과적인 방법을 축적한 뒤 다른 사건을 조사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에는 가해자_미군, 피해자_우리 국민이라는 사건의 성격상 관련 문서와 가해자 증언을 확보하고 있는 미국측의 반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미국측의 성의를 마냥 기다릴 것만이 아니라 전체 양민학살 사건을 다룰 종합대책본부를 구성, 관련자 증언확보나 현장보존작업, 관련문서 발굴 등 적극적인 진상규명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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