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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은빛유혹...억새바다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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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은빛유혹...억새바다로 떠나자

입력
1999.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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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가면서 산 속의 바다도 깊어진다. 능선마다 바람에 출렁이는 억새의 물결. 그 회백색 파도가 등산객을 유혹한다.9월말에서 10월 중순까지 꽃이 피는 억새는 이듬해 봄까지 구경할 수 있다. 영롱한 아침이슬을 맞아 반짝거리는 모습, 눈이 살짝 얹혀있는 설화의 매력, 봄바람에 꺾인 처연한 아름다움등 억새는 벌거벗은 썰렁한 산을 찾는 이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준다. 그러나 역시 억새의 절정은 10월 이맘때부터 11월 중순까지. 이삭이 떨어지지 않은 억새 꽃다발이 하얗게 일렁거릴 때이다. 억새는 한반도 전역에 널려있는 풀이지만 무리지어 자라는 곳이 있다.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며 「억새 명소」로 유명한 곳을 찾아간다.

▩제주 한라산 중턱

한라산의 가을 능선은 온통 억새밭이다. 경사가 2~3도에 불과한 완만한 언덕에서 억새의 무리가 흔들린다. 한라산의 억새밭은 접근하기도 쉽다. 한라산을 빙빙도는 순환도로는 물론 관통로 곳곳에서 억새를 발견할 수 있어 따로 등반이 필요없다. 가장 유명한 곳은 성산 일출봉에서 성읍민속마을을 연결하는 1119번 지방도로의 양켠과 북제주군 조천읍.

1119번 도로의 다른 이름은 「억새오름길」. 오름이란 제주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분화구언덕을 의미한다. 멀리 한라산을 배경 삼아 크고 작은 오름에 얹혀있는 억새군락은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특히 서쪽 한라산 너머로 석양이 지면 황금빛 물이 든 「금억새」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조천읍에서 가장 넓은 억새밭이 있는 곳은 교래리 샘물공장 앞. 일명 산굼부리로 불리는 곳이다. 1118번, 1112번 지방도로의 교차점이다. 5만여평의 평원에 억새가 바다처럼 펼쳐져 있다. 솜구름이 내려온 듯한 그 곳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린다. 삼삼오오 모여 사진찍기에 분주하다.

제주의 억새명소를 또 한군데 꼽으라면 단연 마라도이다. 가을이 익으면서 섬 전체가 완전히 억새풀에 뒤덮인 억새섬이 되어버린다.

▩경기 포천 명성산

신라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향할 때, 여정의 중간에서 커다란 바위산이 그와 함께 통곡했다. 경기 포천군과 강원 철원군의 경계인 명성산(鳴聲山·일명 울음산·923㎙)은 그런 연유로 슬픈 이름을 지녔다. 고집스럽게 이마를 쳐든 삼각봉의 9부 능선에 어마어마한 억새 능선이 펼쳐진다. 명성산의 억새는 남한지역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억새시즌을 알린다. 이미 9, 10일 억새꽃축제가 포천군의 주최로 열렸다.

명성산이 억새의 명소로 더욱 이름을 날리는 이유는 주변 경관이 빼어나기 때문. 북한의 김일성이 그 경치에 매료돼 별장을 지었다는 산정호수가 등산로의 시작이다. 비선폭포, 등룡폭포등 등산로 곳곳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계곡미는 사람들의 넋을 빼기에 충분하다. 등산코스도 정상까지 잘 닦여있고 하산하는데까지 3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산정호수 부근에는 식당가와 위락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억새철이 아니더라도 산행을 즐기려고 서울 인근에 거주하는 등산인들이 붐빈다. 전방지역인 이 곳에서는 군 작전이 자주 실시돼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기도 한다.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산정호수관광지부 (0357)532-6135, 산정파출소(0357)531-6768.

▩경남 창녕 화왕산

화왕산(757m)은 봄·가을 일년에 두 번 매혹적인 혼인색(婚姻色)을 띤다. 봄에는 온통 산을 불태우는 듯한 진달래가 압권이고, 가을이면 정상의 평원이 억새물결로 가득 찬다.

3시간 남짓한 화왕산 산행은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창녕여중에서 시작한다. 40분쯤 오르면 도성암. 통도사의 부속암자로 깔끔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성암에서 정상에 오르는 50여분의 여정은 고통스럽다. 「환장고개」로 이름 붙여진 이 가파른 언덕은 네 발로 기어올라가야 한다. 고개가 끝나는 곳이 정상. 화왕산성이 에워싼 가운데에 밋밋한 분지가 있는데 이 곳이 억새의 군락지이다. 5만6,000여평의 분지에 억새꽃다발이 바람에 흩날린다. 화왕산에서는 초봄이면 이 억새를 태우는 행사를 여는데 커다란 산불을 보는 느낌이다. 이웃 관룡산과 관룡사, 목마산성등도 돌아볼만한 명소이다.

화왕산에 들렸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우포늪. 잘 알려진대로 원시의 생태계를 간직한 국내 최대의 늪지대이다. 이 곳에서는 억새와 비슷한 갈대의 바다를 구경할 수 있다. 부곡온천관광특구에서 여장을 풀면 편히 쉴 수 있다.

▩경남 밀양 사자평고원

한반도 최대의 억새군락지로 꼽히는 곳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가지산과 재악산 사자봉의 사이를 잇는 사자평고원은 넓이가 125만여평에 달한다. 광평추파(廣平秋波)라 하여 가지산의 연봉인 재악산8경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힌다.

사자평으로 오르는 방법은 표충사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길과 쌍폭포를 지나 고사리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첫번째 길은 20~30분정도를 단축할 수 있지만 고개가 가파르고, 쌍폭포로 돌아가는 길은 완만하다. 고사리마을에서는 찻길을 따라가면 된다.

사자평을 찾으려면 들르게 되는 곳이 표충사. 사명대사의 정기가 서린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3,000여 승병을 이끌고 호국불교의 기치를 올렸던 사명대사의 본거지가 바로 표충사이다. 표충사에는 물맛 좋기로 소문난 샘물이 있다. 영정이라는 샘물은 감미롭고 시원하다. 신라 진흥왕의 셋째 왕자가 이 샘물을 마시고 나병이 나았다는 일화가 내려온다. 언양에서 표충사에 이르는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억새와 갈대

억새와 갈대는 흔히 혼동된다. 생김새는 물론 꽃피고 지는 계절까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같은 벼과의 1년생 풀이지만 억새와 갈대는 엄연히 다르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억새는 산이나 비탈에, 갈대는 물가에 무리를 이뤄 산다는 점이다. 억새의 뿌리가 굵고 옆으로 퍼져나가는데 비해 갈대는 뿌리 옆에 수염같은 잔뿌리가 많다. 억새의 열매는 익어도 반쯤 고개를 숙이지만 갈대는 벼처럼 고개를 푹 숙인다.

역사적으로도 억새와 갈대는 혼동돼서 쓰였다. 전남 장성에 있는 갈재는 갈대가 많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노령(蘆嶺)이라 부르지만 실은 갈대가 아니라 억새이다. 또 한가지 혼란스러운 것은 부들. 그러나 억새와 갈대처럼 구분이 어렵지는 않다. 물가에 자라는 부들은 키가 억새나 갈대의 3분의 2정도이고 소시지처럼 생긴 꽃을 피운다.

억새꽃은 그 생김이 백발과 비슷해 쓸쓸한 정서로 와닿는다. 그래서 황혼과 잘 어울린다. 억새꽃을 가장 멋지게 감상하려면 해질 무렵 해를 마주하고 보아야 한다. 어두운 하산길이 위험하다면 해가 45도 이상 누웠을 아침과 오후 늦게가 적당하다. 낙조의 붉은 빛을 머금으며 금빛 분가루를 털어내는 억새를 바라볼 때, 스산한 가을의 서정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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