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타룬 칸나교수와 크리시나 팔레푸교수는 최근 발간된 「하버드비즈니스리뷰 8·9월호」에 개발도상국의 대기업집단(congromerates) 구조조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논문을 공동기고했다(본보 12일자 2면보도). 국내에서도 논쟁거리가 될만한 두교수의 논문을 요약, 소개한다. 편집자주서구식 기업구조조정전략은 오랜 동안 개발도상국의 구조조정 모델로 여겨져왔다. 특히 최근 아시아와 남미의 금융위기 이후 국제기구 금융계 학계 등은 개발도상국 대기업집단이 과감한 자산매각을 통해 과도한 부채를 신속히 감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근본적으로는 거대한 그룹조직을 해체, 경영의 비효율성을 제거하고 기업가정신을 고양시켜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것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시장기구가 전제되어야 하며, 제도적 인프라가 부족하여 시장이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신흥국가의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시장에서 거래비용을 증가시키는 요인은 정보의 불균형과 구매자와 판매자간의 갈등 가능성이다. 선진국은 효율적인 시장 매개자의 역할과 건전한 규제, 계약을 통해 거래비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가령 미국 자본시장의 경우 투자은행은 기업간에 자본을 적절하게 배분해주며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투자자에게 믿을만한 기업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수천 개의 경영대학원이 우수한 경영인력을 공급해주고 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은 이런 소프트인프라의 부족으로 시장에서의 거래비용이 높으며 기업 외부의 시장에 의존한 기업의 성장 역시 제한적인 게 현실이다. 개발도상국에서 그룹조직은 시장의 제도적 미비로 인한 공백을 메우며 시장기구를 대신해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해오고 있다. 첫째, 기업집단은 새로운 사업을 수행하기 위한 벤처캐피털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한국의 경우 벤처자본과 전문적 자본 중개시장이 미흡한 상황에서 그룹조직은 기존 사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경영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둘째, 대기업집단은 노동시장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있다.
경영대학이 부족한 한국의 삼성그룹은 다양한 사업활동에 경영진들을 참가시킴으로써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거대한 그룹 규모와 영향력을 활용하여 자체 연수프로그램에 세계적인 석학들을 참여시키고 있다. 이러한 브랜드네임은 세계의 다양한 고객을 상대로 다국적기업과 경쟁을 해야하는 한국같은 수출지향형 경제에서는 매우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장기능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그룹조직에 대한 급격한 해체는 오히려 민간부문의 비효율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고통을 증대시킬 수 있다. 또한 한국 등 개발도상국 경제권의 국가가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에는 최소한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개발도상국의 정부정책은 급격한 대기업집단의 해체보다는 시장기구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단기적으로 대기업집단이 경영성과를 향상시키는 내부개혁을 추진토록 유도하며, 장기적으로 시장제도를 설립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런 시장기구의 구축과정을 통해 그룹구조는 정부가 아닌 시장의 압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해체될 것이다.
기업집단 역시 내부경영 혁신을 위해 근본적인 변혁을 자체적으로 추진해야한다. 먼저 「선 성장, 후 수익성」위주의 경영전략을 「선 수익성, 후 성장」위주로 전환하고 직무평가 및 인센티브시스템의 개선과 함께 수익성이 낮은 사업의 철수, 외부차입위주에서 자기자본위주로 재무전략의 수정 등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그룹본부를 서구의 벤처캐피털 등과 같은, 소프트인프라를 그룹내에 제공하는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존 사업에 대한 자금지원은 외부자본시장에 맡기고 그룹본부는 벤처자본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여 위험자본 제공, 채용, 교육업무 순환프로그램 투자, 제품의 품질, 대고객서비스, 직업윤리의식 향상, 기업투명성 제고 및 건전한 지배관행 실행 등을 총괄할 필요가 있다.
/타룬 칸나, 크리시나 팔레푸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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