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슨 웰스가 감독·주연한 할리우드의 전설적 명화 「시민 케인」은 요즘 언론 비판자들의 용어를 빌리면 「언론권력」의 흥망을 그린 걸작이다. 영화의 성공은 대배우 오슨 웰스의 카리스마에 힘입었지만, 주인공의 실존모델인 허스트 신문그룹 소유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삶 자체가 그만큼 극적이다. 언론사 학자들은 「시민 케인」과 허스트를 한 세기전 전환기의 영미 언론 소유주와 정치권력의 관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나란히 예를 든다.■허스트는 1887년 일간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를 아버지 조지 허스트에게서 물려받은 뒤 무차별적인 여론조작과 부수확장을 통해 언론권력의 정점에 접근한 인물이다. 아버지도 신문을 도약대삼아 상원의원에 올랐지만, 그는 과장과 위선에 찬 선정적 보도로 여론을 농락했다. 정치인등 공인의 명성을 마음대로 만들고 파괴했으며, 쿠바를 놓고 스페인과 불필요한 전쟁을 선동하기까지 했다. 목적은 오로지 부수확장과 정치적 영향력 확대였다.
■「권력은 신문부수에서 나온다」고 공언한 허스트는 하원을 거쳐 대통령후보 지명전에까지 진출했다. 정치 부패상을 질타하면서도 스스로 정치인들을 매수·협박해 상당한 지지를 얻었으나, 결국 판사출신의 평범한 경쟁자에게 패한 뒤 성격파탄속에 고립돼 1951년 외롭게 죽었다.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은 부유하고 오만하며 광기어린 권력욕에 불타는 전형적 「언론황제」의 비극을 셰익스피어 극처럼 리얼하게 그린 것으로 평가된다.
■허스트의 전성시대, 언론제국 영국의 신문사주들은 귀족 작위를 받고 정치무대에 올랐다. 그러나 모두가 상처와 환멸을 안은채 제자리로 돌아가야 했고, 이들이 신봉한 언론권력은 논설과 여론의 힘을 착각한데 불과했다는 후세의 평가다. 허스트 신화는 망각속에 묻혔지만, 그가 질시한 경쟁자 퓰리처는 영원히 남았다. 시대착오적인 「언론권력」의 미망에 빠져 스스로 정치무대의 배역을 맡은듯 행동하는 언론 관계자 모두가 유념해야할 교훈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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