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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 인생스토리] 생계위해 프로입문 노력파'헝그리골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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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 인생스토리] 생계위해 프로입문 노력파'헝그리골퍼'

입력
1999.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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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의 삶의 철학은 「잘 살자」이다. 의외다. 귀엽고 해맑은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골프는 적어도 그에겐 사치스런 취미도 아니요, 한가로이 즐기는 운동도 아니다. 잘 살기 위한 생활수단이요, 집안을 다시 일으키기 위한 삶의 전부다. 「헝그리 골퍼」인 셈이다.그렇지만 그의 골프는 「귀족」으로 시작됐다. 88년 당시만해도 골프는 「귀족스포츠」의 전형. 그런 골프를 더구나 12살의 6학년 초등학생(부산 충무초등)이 하기란 쉽지않았다. 김미현은 종업원 70명을 둔 중견 신발제조·판매업을 하던 아버지(김정길·52)를 둔 덕택에 가능했다. 당시 가축병원에 약품을 납품하던 큰아버지의 권유가 출발의 시작이긴 했지만.

김미현의 키는 그때만해도 150㎝. 당시로서는 표준 이상이었다. 게다가 더 큰 선수들보다도 드라이버샷이 멀리 나갔기 때문에 기술적이나 심리적으로 열등감을 느끼지 않았다. 그의 골프는 부산진여고 2학년때 180도 다른 의미로 변한다. 「헝그리 골프」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식구들이 모두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고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프로에 뜻을 두었지만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용인대로 진학했다.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다. 96년 용인대 2년때 학업을 포기하고 생계를 위해 프로의 길로 들어섰다. 아마시절 국내무대를 양분했던 박세리와의 경쟁이 프로무대에서 다시 불붙었다. 박세리는 고교졸업후 곧바로 프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박세리는 삼성이라는 든든한 스폰서를 지렛대로 삼아 일취월장, 마침내 태평양을 건넜다. 반면 김미현은 국제상사와 스폰서계약을 했으나 법정관리로 들어가는 바람에 이마저 여의치 못했다.

1년뒤인 98년11월. 김미현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아 미국무대로 향했다. 중고밴에서 「동가식 서가숙」하는 갖은 고생끝에 지난달 스테이트팜레일클래식에서 마침내 감격적인 LPGA 데뷔 첫승을 올리기에 이르렀다. 키가 오히려 작았기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더 노력하게 됐다. 150㎝의 신장으로 97년 US여자오픈을 제패한 영국의 단신선수 앨리슨 니콜러스를 표본으로 삼아 간직해온 세계 제패의 꿈을 이제 하나씩 실현해가고 있다.

남재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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