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학력이 11년 전보다 크게 떨어졌다는 데이터가 나왔다. 민간 교육평가 기관인 중앙교육진흥연구소가 88년 학력고사 문제와 같은 문제로 같은 지역 고교 1년생들에게 시행한 학력테스트 결과 전체 평균점수가 259.6점에서 224.7점으로 떨어졌다.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평균 64.9점에서 낙제점수인 56.2점으로 추락했다.교육당국은 평가의 객관성과 타당성 결여를 이유로 단순한 점수비교는 무의미 하다고 말한다. 그 사이 교육과정이 크게 달라져 암기 위주에서 창의력 중심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옳은 말이다. 사회조사방법론이나 통계학적 이론에 충실한 비교조사 결과가 아니므로 전체학생들의 학력이 떨어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시험대상 학생수가 적어졌다고는 해도 같은 지역, 같은 학교를 대상으로 한 시험의 점수차가 이렇게 큰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평준화 지역 성적이 크게 떨어진 현상이다. 고교입시 제도가 있는 비평준화 지역 학생들의 평균점수는 60점 만점에 0.5점 하락에 그쳤으나, 평준화 지역은 68.9점에서 54.7점으로 무려 14.7점이나 떨어졌다.
우리가 이 현상에 주목하는 것은 2002년부터 시행될 대학입시 무시험 제도,고입 학력고사 제도 폐지 등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이다. 2002년 무시험 대입전형 대상자인 고교 1년생들은 지금 전에 없던 수행평가 방식으로 성적평가를 받고 있다.
지필고사에 의한 교과목 시험성적만을 학업성취도 평가의 절대기준으로 하던 데서 특기·재능·리더십·봉사정신 등 다양한 인성을 모두 평가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그만큼 교과목 성적의 중요성이 떨어졌다.
성적평가 방식도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뀌어 마음만 먹으면 학생의 성적을 얼마든지 올려줄 수 있게 되었다. 대입전형에 유리하게 해주려는 학교 당국의 성적 부풀리기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9월 서울에서는 시험이 너무 어렵게 출제됐다는 학생들의 불평 때문에 쉬운 문제로 재시험을 치른 학교가 24개교나 적발됐다.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큰일 나지 않는 제도와 풍토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현상이다.
무시험 대입제도와 고입 선발고사 폐지 등이 학업의 중요성을 떨어뜨려 「교실붕괴」라는 반교육적 현상을 초래하지는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볼 일이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인력의 질마저 떨어진다면 우리의 장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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