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사건으로 구속됐다 7일 「공소보류」 조치로 석방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金永煥·36)씨와 전 「말」지 기자 조유식(曺裕植·35)씨가 수사기관에서 작성한 사상전향서 성격의 반성문이 9일 공개됐다.김씨 등은 과거 반성과 사상전향을 공식화하고 민혁당 사건으로 사상적 혼란과 심적 동요를 겪고 있을 과거 조직원들의 올바른 가치판단과 자수결심에 도움을 주기 위해 반성문을 공개해도 좋다는 의사를 수사당국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환반성문 요지
저는 대학에 들어와 자연스레 학생운동에 가담하게 됐고 역사와 사회현상에 대한 명쾌한 해석을 내린 마르크스주의에 이끌렸습니다. 주체사상은 민족주체의식과 인본주의를 강조하던 우리에게 아주 매력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강철서신등의 글을 써 주체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주사파라는 운동권 최대세력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89년2월 「반제청년동맹」에 가입해 활동했고 남파공작원에 포섭돼 북과 연계를 맺고 91년 밀입북, 김일성과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북한의 경제실상은 예상보다 훨씬 열악했고 당 간부들은 주민들에게 고압적인 자세였으며 김일성의 사고는 박제화해 있었습니다.
북과 연계를 갖고 활동하면서 노동운동엔 도움될 게 없었고 유일한 도움이 통일운동이었지만 북은 오히려 일관되게 방해만 했습니다. 93년 대중과 유리된 통일운동의 걸림돌이 「범민련」이라고 보고 이를 해체하기로 했지만 북은 노골적으로 비난하며 방해했고 남한 운동권은 분열상황에 빠지게 됐습니다.
92년 넘어온 강철환, 안혁 등 탈북자들의 증언은 북의 비참한 실상을 깨우쳐 줬습니다. 그 이후에도 거짓말임이 드러나지 않아 종합적으로 볼때 이들 증언이 대체로 진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은 엄청난 특권과 사치생활을 즐기고 주민들의 사소한 잘못을 가차없이 처벌하면서 자기들은 첩을 몇명씩 두고 부도덕한 짓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주체사상은 지배의 도구에 불과할 뿐이고 인민의 자주성을 가장 심하게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과거의 잘못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이었습니다. 첫째 운동권 전반에 친북적인 분위기를 확산시켰습니다. 둘째 북한의 대남전략에 말려들었습니다. 셋째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한 남한 및 국제사회의 관심이 늦어지도록 하는데 한몫 했습니다.
북한동포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며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북한의 인권실상을 널리 알리고 북한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모든 힘을 바치고 싶습니다.
■조유식반성문 요지
저의 북한에 대한 환상은 북한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깨져 나갔습니다. 91년 5월16일밤 강화도에서 반잠수정을 타고 해주에 도착한 뒤 초대소로 이동할 때 창밖의 농촌지대를 지켜보다 말할 수 없이 남루한 3층 건물 한채를 봤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사는 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의 것은 아무의 것도 아니다」라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병폐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습니다.
며칠후 평양에서 주체탑의 입구계단을 오를 때 규정된 방향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리인 남자가 다짜고짜 심한 욕설을 했습니다. 그처럼 사람을 막 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모란초대소에서 북한 공작원이 그 전해 5월 남한에서 운동권사람들이 연이어 분신하면서 격렬하게 시위를 벌인 얘기를 하면서 「그 투쟁은 운동권에서 순번을 정해놓고 대중운동을 격발시키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죠」라고 물었을 때 참으로 섬뜩했습니다.
저의 행동은 북한정권과 주체사상에 대한 오도된 인식에서 비롯됐습니다. 83년 처음 학생운동에 나설 땐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했으나 이념학습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유일의 진리로 받아들이게 됐고, 다시금 86년부터는 북한의 선전에 넘어가 북한체제를 마치 지상에서 가장 높은 도덕적 발달상으로 착각하게 됐습니다.
저의 입장은 명백합니다. 북한의 김정일정권은 하루라도 빨리 무너질 수록 좋고 김정일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정권과 협상도 할 수 있고 햇볕도 쬐어줄 수 있으며 쌀도 갖다줄 수 있지만 김정일 정권을 대하는 근본태도 만큼은 확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정권의 본질을 널리 알려 더 이상의 안타까운 분단의 희생자가 발생치 않도록 하는 것도 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젊은 학생들이 저와 똑같은 전철을 밟아 황금같은 젊은 날의 꿈과 이상을 유린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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