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언론의 정면 충돌은 불행한 일이지만 양자의 관계를 재정립하는데 다행스러운 계기가 될수도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 사장의 구속사태가 정권과 언론간에 폭로전으로 번진 것은 눈살 찌푸려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잠재적이었던 양자의 관계가 노출된 것은 언론자유의 신장에 한 디딤돌이 될수도 있을 것이다.좋게 봐서 그렇다는 말이지, 이번 사건으로 정권도 특정언론도 멍이 들었지만 신문사에 몸담고 있는 입장에서는 최대의 피해자는 전체 언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론의 헌데에 소금물을 끼얹은 듯이 쓰리고 아프다.
보광그룹 탈세사건에 대한 수사는 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언론길들이기라는 의심을 받게 되어 있다. 의심을 받든지 말든지 혐의있는 곳에 수사있다는 태도는 일견 지당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만 못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자면 정권이 언론에 부당하게 관여한 흔적이 없어야 옳다.
정권이 언론에 간섭한 대목에 대해서는 중앙일보가 공개지면을 통해 허위사실을 보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정권이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다른 언론들이 아연 긴장한다면 언론길들이기의 효과는 십분 발휘되는 것이다.
정권의 언론탄압은 어떤 경우에도 되풀이 되풀이 지탄받고 성토되어야 마땅하다. 언론자유는 언론기관의 권리가 아니라 전국민의 기본권이다. 정권이 언론기관의 약점을 이용해 치사하게 언론탄압을 시도한다면 언론 또한 치사하게라도 반발하고 보복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도 언론으로서는 이 기회에 자신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언론자유 수호를 목쉬도록 외칠만큼 언론자유를 선용하고 있는가. 중앙일보 사태는 우리 언론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고 그래서 언론은 부끄럽다.
중앙일보는 97년 대선 때 특정후보를 지지해 편파보도를 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IPI(국제언론인협회)에 보낸 구원요청 서신을 통해 자인하다시피 했다. 한 신문이 한 후보를 의도적으로 밀었다면 독자들은 절망한다. 목청좋게 중립을 표방해온 신문으로서는 정도(正道)를 잃었을 뿐 아니라 정신을 잃은 것이다. 신문이 대권(大權)만들기에 장난질이나 하는 기관지로 인식된다면 독자들의 신문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기대할 것인가.
또 중앙일보가 사장의 구속과 관련해서 『모든 인사를 정부가 원하는대로 하겠으며 대통령의 임기내 협조하겠다고 제의했다』는 청와대발표는 독자들을 실색케 한다. 언론이 정부와 어떤 형태로든지 뒷길에서 흥정하는 자체가 패도(悖道)일뿐 아니라 어떤 보상을 신문과 맞바꾸겠다는 것은 신문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사권을 정부에 헌납하고 편집권을 정부에 기증하고 나면 신문에 남는 것이 무엇인가. 독자들에게는 모든 신문이 지금까지 자의로 사익에 따라 정부에 협조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해온 것으로 비쳐지게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언론이 불신당하고 있는 시대에 그 불신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가 이번에 노정(露呈)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언론의 행태가 중앙일보만의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대다수 우리 언론들의 양태라고 봐야 한다.
단적으로 신문의 경우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지방지는 차치하더라도 서울에서 발행되는 전국 종합일간지가 10개나 된다. 이런 나라가 없다. 이들이 과당경쟁으로 시장을 분점하면서 경영상의 부실을 상호조장한다. 이런 신문들이 아무 약점도 없을 수 없다. 또 이 신문들이 모두 대의(大義)와 공익만을 위해 탄생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언론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언론을 통제하고 싶은 것은 모든 나라 모든 정부의 속성이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 아니라 정부가 통제하고 싶을만큼 언론은 본래 꼿꼿한 것이라는 말이다. 언론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지 언론에 간섭할 틈을 열어주어서는 안되고 빌미를 제공해서도 안된다. 그러자면 언론은 약점이 없어야 한다. 약점만 없다면 정권이 강권(强拳)으로 언론을 탄합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다. 중앙일보사태는 그 틈을 열어준 것이다.
깨끗한 자만이 깨끗한 신문을 만들 수 있다. 당당한 자만이 당당한 신문을 만들 수 있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만이 언론자유를 구가할 수 있다. 자유언론의 길만이 언론자유로의 길이다. 이런 자유언론상을 세워가는 데 중앙일보 사태는 교훈이 될 것이다.
/본사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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