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살바기가 된 부산국제영화제(Piff)가 14일 개막한다. 54개국 208편의 영화가 23일까지 10일 동안 12개 상영관에서 저마다 예술성과 독창성을 자랑하고, 그 이름만으로 가슴을 설레이게 하는 스타들이 부산 거리를 찾는다.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돼 호평을 받았던 장선우 감독의 문제의 영화 「거짓말」은 예매 시작 3시간 만에 매진됐다. 「초록물고기」 이창동 감독의 두번째 영화로 개막작으로 선정된 「박하사탕」과 폐막작 「책상서랍 속의 동화」(감독 장이모·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도 입장권이 바닥났다. 예매 6일 만에 총 26만 4,950석의 절반에 가까운 11만 7,000여석이 예약됐고, 330회 상영 중 50회가 매진을 기록했다.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은 스웨덴 루카스 무디손 감독의 「쇼우 미 러브」, 일본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쌍생아」 등 12편은 표를 구할 수도 없다.
한 달이 멀다하고, 「국제」란 꼬리표를 달고 열리는 수많은 영화제들. 영화산업과 영화의 수준이 대단하지 않은 나라에서 슈퍼마킷식 영화제가 많다는 것은 서글프게도 그만큼 평소 예술영화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계 수작들이 모이고, 「아시아 영화의 열린 창」이 된 Piff가 우리의 젊은 영화광들에게는 더욱 소중하고 반갑다. Piff가 『갈수록 외화 수입업자들이 자기 작품을 광고하고, 흥행을 미리 점치는 무대로 전락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어쩌랴. 이만큼 풍요로운 영상잔치가 없는데.
◆「박하사탕」에서 「책상서랍속의 동화」까지
아이는 사탕 진열장 앞에서 망설인다. 너무나 황홀한 색깔의 사탕들. 모두 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아이는 몇번이고 사탕을 골랐다 놓았다 한다. 208편 어느 하나 놓치기 싫다. 올해는 「무슨 국제영화제 수상」이 자랑거리가 못된다.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가 40%나 되니까. 그래서 Piff는 영화인들, 영화산업 보다는 「관객의 잔치」다.
「아시아 영화의 창」 부문을 열면 21편이 가족과 전통과 운명을 이야기한다. 올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이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와 「철도원」(일본, 후루하타 야스오), 태국판 「쉬리」인 마노프 우돔엣의 「화염속의 꽃」과 대만 첸 쿠오푸의 「청혼광고」는 프로그래머 김지석씨가 적극 추천하는 작품.
아시아영화의 미래를 여행하고 싶다면 「뉴커런츠」로 가라. 그곳에는 21세기를 짊어질 젊은 아시아 감독 13명의 새로운 영상언어들이 있다. 한국은 김국형의 「구멍」과 전수일의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가, 일본은 이케하타 순사쿠의 「가을국화」와 오쿠하라 히로시의 「영원한 멜로디」가 기다린다. 인도 무랄리 나이르의 「사좌(死座)」와 중국 류방지엔의 「남남여여」에서도 현실에 고뇌하는 젊음을 읽을 수 있다.
52편이 몰린 「월드시네마」는 그야말로 세계영화제 참가 및 수상작의 바다이다. 「검문소」(러시아, 알렉사드르 로고슈킨) 「미후네 도그마3」(덴마크, 크라 야콥슨) 「밤에 생긴 일」(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은 올해 베를린영화제, 「휴머니티」(프랑스, 브뤼노 뒤몽) 「화약고」(유고, 골란 파스칼리에비치) 「종착역」(루마니아, 뤼시앵 핀타일) 「편지」(포르투갈, 마누엘 올리비에라)는 칸영화제 수상의 영예를 안고 찾아왔다. 아프리카의 세네갈, 모로코 영화도 볼수 있다.
25개국 75편의 단편과 다큐멘터리는 「와이드 앵글」에 잡혀있다. 올해 베를린과 칸에서 단편 대상을 차지한 러시아 세르게이 오브츠샤로프의 「파라오」와 캐나다 웬디 틸비의 「하루가 시작될 때」는 애니메이션. 박기복의 「냅둬」와 김동원의 「행당동 사람들」에서는 이 땅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의 고투가 보인다. 「오픈 시네마」는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 감독들의 영화를 모았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비시즈드」로, 페드로 알모도바르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칸영화제 감독상)으로, 키타노 타케시는 「키쿠지로의 여름」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월령공주」로 거장임을 입증한다.
◆그들이 온다
650명의 외국 손님 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중국 5세대 감독을 대표하는 장이모. 홍콩의 인기스타 유덕화도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의 프로듀서로서 신세대 감독인 프루트 챈과 함께 온다. 유명감독의 2세들도 온다.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로 「대부3」에 출연했던 소피아 코폴라도 「처녀자살소동」, 「아톰」의 일본 테즈카 오사무 감독의 아들 테즈카 모코토는 「백치」의 감독이 돼 부산을 찾는다. 부탄의 승려감독인 키엔체 노르부도 관심의 대상. 중국 젊은 감독 지아장케와 장위엔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참가한다. 태국의 청춘스타 아미타 영과 레이 맥도널드, 「가을국화」의 일본배우 오가타 켄도 만날 수 있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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