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 폰 트리에. 덴마크 감독이다. 칸영화제 기술공로상을 두번이나 받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스타일리스트. 「유로파」 「브레이킹 더 웨이브」 「킹덤」이란 영화로 이름을 날렸다.95년 3월 13일. 그는 토마스 빈터베르그, 크리스찬 레블링, 소렌 크라히 야콥슨과 함께 「도그마 선언 95」을 했다. 모든 영화적 트릭을 배제한다는 소위 「순결의 서약」이었다. 촬영은 반드시 로케이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특수조명은 금지한다. 필터사용을 금한다. 살인과 폭력은 안된다. 장르영화는 허용되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것은 금지된다. 심지어 감독 이름은 크레디트에 올리지 않는다까지.
그는 『영화에 어떤 결정이나 조정도 하면 안된다』 『촬영 후 사운드나 영상에 어떤 작위적인 수정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선언 후 그는 98년 「백치들」이란 영화를 만들었다. 호화로운 주택에 모인 젊은이들이 잠재된 거짓을 백치 게임을 통해 표출해 내는 영화이다. 집단혼음과 성기노출, 실제 정사장면으로 지난 2월 수입불가 판정을 받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최근 재심의에서 이 영화는 삭제없이 18세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어떻게 했길래. 라스 폰 트리에의 양보 덕분이었다. 필름 그대로 한국에서 상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안 제작사는 감독에게 부분삭제를 요청했다. 펄쩍 뛴 감독. 「도그마 95」를 뒤흔드는 요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문화적 차이를 인정했다. 직접 노출이 심한 몇 장면을 가렸다. 『대신 그 이외는 절대 손대지 말라』는 조건으로. 그의 양보로 「백치들」은 정말 작품 흐름이 끊기거나 손상됨이 없이 한국에서 상영이 가능해졌다.
그와 대조적인 감독은 지난 3월 사망한 미국의 스탠리 큐브릭. 어떤 이유건 자신의 영화는 누구도 손을 못대게 했다. 우리말 영화제목, 포스터, 광고문안까지 직접 보고 「OK」싸인을 해야 사용 가능하다. 우리말을 모를까봐 포스터에 「아래, 위」표시를 해서 보내라고까지 요구할 정도. 이쯤이면 작가의 자존심이 아닌 오만이다. 죽어서도 그것이 이어져 얼마전 유작 「아이즈 와이드 샷」의 미국개봉때 몇장면 삭제한 것을 놓고 유족들이 난리를 쳤다. 그의 고집으로 한국에서는 등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
누가 옳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큐브릭처럼 한다고 해서더 위대한 감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감독이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먼저 그 나라 정서와 문화, 제도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쉬움은 있지만 가능하면 한국관객과 자신의 영화를 만나게 해주려는 라스 폰 트리에의 현명함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이것조차 검열이고 굴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영화를 만들 자격이 없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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