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15일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는 유럽연합의 행정부인 유럽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위원장으로 로마노 프로디(Romano Prodi) 이탈리아 전(前)총리를 인준했다.서로 다른 전통과 이해 관계를 가진 유럽연합 15개국의 입장을 절충해야 하는 유럽위원회 위원장의 자리는 결코 편한 자리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프로디위원장 앞에 놓인 과제는 특히 막중하다.
우선 프로디위원장은 유럽위원회의 운영을 혁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전임자였던 쟈크 상테르(Jacques Santer)위원장이 이끌던 위원회가 부패와 무능을 이유로 유럽의회의 탄핵을 받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3월 물러났던 관계로 유럽위원회의 정치적 신뢰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프로디위원장은 취임하자마자 신뢰회복을 위해 유럽위원회의 관료조직을 통폐합하여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며 공직 윤리를 고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조직 쇄신책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프로디위원장 임기중에 유럽위원회가 무능하고 부패하다는 이미지를 바꾸지 못하면 앞으로 그 운신의 폭이 극도로 좁아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직개편은 절대적 중요성을 갖는다.
그러나 프로디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조직개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럽연합의 확대(enlargement)문제이다. 유럽통합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베네룩스 3국 등 6개국의 석탄산업과 철강산업에 국한된 협력으로 시작하여 한 세대만에 단일통화(유로)를 포함한 광범한 영역에서 15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국적 정부기구로 발전하였다.
이렇듯이 유럽연합은 지리적으로, 그리고 그 정책영역에서 꾸준히 그 확대를 추구해왔다. 그러나 1991년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그에따라 다수의 동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의 가입을 원하게 되면서 「확대」는 유럽연합에게 가장 어렵고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되었다. 프로디 위원장이 이번 취임사에서 유럽연합의 확대문제를 자신의 제일 과제로 천명하고 그 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를 새로 설립하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유럽연합의 확대에서 가장 큰 문제는 과연 유럽연합의 궁극적 범위는 어디까지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에서 러시아는 가입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은 일차적 가입대상이라는 점에서 합의가 형성되어 있지만 민간제국 그리고 그를 넘어 우크라이나 등 구(舊)소련 공화국들이 과연 가입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합의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지리적 확대범위가 정해진다고 해도 해결되어야할 문제는 많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입을 바라는 나라들이 거의 모두 기존 회원국들보다 가난한 나라들이라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큰 원칙 중에 하나는 더 잘사는 회원국들이 못사는 회원국들에게 여러 형태의 보조금을 지급하여 회원국간의 생활수준 격차를 줄인다는 것인데, 이때문에 가난한 나라들을 새로운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기존 회원국들이 재정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짧게는 수십년, 길게는 40여년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기존 회원국들간에도 보조금 문제로 논란이 많은데 전통적인 유대관계도 없고 도움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동유럽 국가들에게까지 보조금을 주어야 한다고 하면 기존 회원국의 국민들이 반발할 것은 뻔한 일이다. 이에 더하여 스페인 포르투칼 그리스 아일랜드 등 보조금을 받는 입장에 있는 기존 회원국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던 보조금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유럽연합 확대에 미지근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큰 장애이다.
과연 프로디위원장이 기존 회원국들과 신규가입을 바라는 국가들간의 이익을 조화시키면서 유럽통합의 이상을 한단계 더 진전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장하준 영국케임브리지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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