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풍요 속에서 야위어 가는 우리를 돌아본다. 한국연극의 산 역사 오태석(59), 이근삼(70)씨가 나란히 신작을 발표했다.극작·연출가 오태석씨의 극단 목화가 공연하는 「코소보, 그리고 유랑」은 오씨의 36번째 신작. 서울시립극단이 공연하는 「공룡의 발자국을 찾아서」는 희곡작가 이근삼씨의 46번째 작품.
6·25가 끝난 뒤, 포로 교환 당시 제 3국 브라질을 택한 한기정으로부터 「코소보…」는 시작한다. 코소보의 살육담을 접한 뒤로, 전쟁의 상흔이 되살아나 견디다 못한 그는 자원봉사자로 코소보에 간다. 그러나 돈을 벌기 위해 가능한 한 참혹한 사진을 찍어 언론에 파는 한국 사진 기자를 만났을 뿐.
이미 남도, 북도 그에게는 지옥이었다. 북한은 새천년 범민족 대회를 내세워 그동안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제 3국행 동포를 포섭하려 하고, 남한은 금강산 관광을 명목으로 그들에게 접근한다. 절망한 그는 남북한 어디든 갈 수 있는 비행기표를 모두 반납한다. 알바니아에 보복할 날만을 기다리며 목숨을 부지하는 가엾은 세르비아 노파를 보살피기 위해서.
98년 코소보 해방군과 세르비아군 사이에 벌어졌던 전투로 발생한 18만 난민 등 코소보 사태에 관한 정보는 오씨가 그동안 CNN 등 외신을 통해 수집해 두었다. 세르비아군이 알바니아계 주민에게 기관총을 난사해 일가족을 몰살하는 등의 장면이 덕분에 생생하게 재현된다. 새하얀 바닥에 흩날리는 붉은 천(코소보의 백설에 흩뿌려진 피보라) 장면 등에서는 오씨 특유의 볼거리가 여전하다. 남북 대립의 현실도 투영된다. 두 민족이 각각 부르는 노래가 「두만강(남쪽)」, 「도라지(북쪽)」.
이 연극은 한국 연극 최초로 UNHCR(UN 난민고등판무관 사무소)의 후원 아래, 수익금 일부를 난민보호기금으로 내 놓기로 약속돼 있다. 12월 7일까지 아룽구지. 화~금 오후 7시30분, 토 오후 4시30분 7시30분, 일 오후 3·6시, 월쉼. (02)745_3966
「공룡…」은 이씨가 첫 작품인 58년의 「끝없는 실마리」 이래 끊임없이 추구해 온 갖가지 웃음의 미학의 현재다. 그러나 이번에는 쓸쓸한 웃음이다. 잃은 자들이 펼치는 코미디이기 때문.
어딘가는 공룡의 발자국이 있다며 갑자기 헤매는 70대 아버지 허거집. 장남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이 시대 중년의 버거운 행로를 상징하는 허장수, 40대에 퇴직당한 허차수. 풍요로와 뵈는 시대이지만, 획일화해가는 가치 속에서 정신적으로는 공허해져 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러나 정신 나간 홀아버지를 모시기 위해 독신을 택한 딸 허유순을 통해 작가 이씨는 우리 시대에 따스한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윤주상 박봉서 여무영 주진모 등 중견 배우들의 코미디 앙상블이 기대된다. 최용훈 연출. 9~24일 세종문화회관소강당, 월~목 오후 7시30분 금·토 오후 4시 7시30분, 일 오후 4시. (02)399_1647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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