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개혁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죄가 있으면 처벌한다』 『법률적 판단외에 다른 배경은 없다』는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 현재 나타나고 있는 정부·재벌의 관계는 확실히 과거와 다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국민의 정부」 출범후 지속되어온 재벌개혁정책은 한마디로 「제도를 통한 구태청산」. 선단식 경영을 깨기 위해 상호지보를 철폐했고, 황제경영을 막기 위해 지배구조를 개편했으며, 빚경영 청산을 위해 부채비율 200%제도를 도입했다. 과거처럼 정권의 임의적 판단 아닌 법령과 제도를 통해 문제를 풀어감으로써 재벌정책을 문자그대로 투명하게 꾸려 나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외견상 최근의 흐름은 이런 종전 기조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보광·한진그룹 세무조사 및 오너 형사고발,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회장 부자에 대한 변칙증여조사, 이에 앞서 금호그룹 주가조작수사와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회장 구속등 최근 재벌들에 대한 일련의 「단죄 시리즈」에서 나타났듯이 국세청과 검찰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재계의 긴장은 국민의 정부 1년8개월 기간중 최고조에 달해 있다. 재벌로선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오너의 상처」를 보면서 가히 「공포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재계에선 『현 정부도 결국은 제도와 법령이 아닌 사법권과 공권력으로 재벌을 길들이려 한다』는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물론 정부입장은 『세금을 안냈으면 추징하고 법을 어겼으면 처벌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고 볼 수는 없다. 비록 인위적인 재벌해체나 인적 청산은 아니더라도 세무조사 사법처리로 이어진 최근 기류가 오너체제에 대한 거부감과 맞닿아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기류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됐다. 부실기업(삼성차) 처리과정에서 전례없이 오너 사재출연을 끌어낸 「총수 무한책임론」, 대우그룹 김우중(金宇中)회장의 조기퇴진론등은 바로 오너 1인의 「황제경영」에 대한 정부의 부정적 시각을 잘 나타내준 대목들이다. 이같은 연장선상에서 볼 때 이번 세무조사 및 검찰고발도 결과적으로 세금을 탈루하고, 불법과 변칙을 일삼으면서, 경영책임을 외면한 총수들에 대한 단죄의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세무조사 및 사법처리를 둘러싼 의혹과 불안감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로선 타깃이 「특정총수」인지, 「총수체제」인지를 보다 분명히 해
야한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