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의 극단 전설과 1년차 극단 주변인물이 함께 만든 「계산기」는 별난 가상 연극이다. 기계에 인간이 쫓겨나는 참담한 현실을 갖가지 볼거리, 들을거리로 은유한다.정갈함과 지저분함이 극단적으로 대비돼 눈을 사로잡는다. 병적일 정도로 깨끗한 사무실이 인간적인 가치가 기계에 송두리째 앗긴 상태를 나타내다, 순식간에 폐지 더미가 쏟아져 내려 무대를 아예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든다.
25년 동안 하루처럼 다닌 남자가 어느날 구조조정을 이유로 쫓겨난다. 마침 그의 앞에는 계산기가, 아내의 몸보다 더 익숙한 계산기가 놓여 있었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계산기를 들어 사장을 내리쳐 죽이고는 사형된다. 여기까지의 극중 현실은 우리를 닮아 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그가 하늘에서 씻겨져 우주 광산의 단순 노동자로 거듭나기까지, 하늘에서 겪는 가상의 이야기.
다채로운 음악은 시각적 효과를 받쳐준다. 온유한 현악에서 격렬한 힙합까지, 음악적 효과가 강렬하다. 이들 음악은 극중 부부가 30여초 동안 나누는 실제 키스 장면, 오만잡동사니 인간들의 광란적 군무 등을 극적 필연으로 승화시킨다. 특히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를 강렬한 비트에 녹인 에니그마의 「Mea Culpa(내 죄로소이다)」는 성(聖)과 속(俗)이 교묘하게 중첩되는 작품 속에 녹아 든다.
표현주의와 사회주의로 부르주아 기독교 사회의 위선을 고발했던 엘머 라이스의 작품이 워크샵 공연을 박차고 처음으로 일반에 소개되는 자리기도 하다. 20년대 미국 자본주의를 혐오하던 지적 분위기가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10일까지 정보소극장 금·토 오후 4시30분 7시30분. 일 오후 3·6시. (02)3673_0554/장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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