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봉의 전설74년 가야금 명인 유대봉이 마흔아홉의 나이로 덜컥 세상을 떠났다. 그것으로 우리 전통음악 선율 중에도 가장 자유분방한 가락으로 꼽히던 그의 산조도 사라졌다. 그를 기억하는 원로 국악인들 사이에 전설처럼 떠돌 뿐이다. 그 가락을 물려받은 이가 없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연주된 적도 없기 때문이다. 60년대 무대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던 명인이건만, 이제 그의 이름조차 낯설어졌다.
유대봉은 즉흥의 달인이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자재로 가락을 갖고 놀았다. 워낙 술과 사람을 좋아하던 그는 대취하여 흥이 나야 가야금을 끌어당겨 한 가락씩 타곤 했는데, 그때마다 즉흥적인 선율을 따라가는 통에 그의 산조는 제 모습을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다. 국립극장 무대에서 가야금산조를 타다가 느닷없이 가락을 확 돌려 대중가요로 넘어가곤 하던 그였다. 누가 그의 산조를 배우러 와도 매번 가락이 달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 바람에 그의 산조는 전수되지 못하고 잊혀졌다.
▲백인영이 살려낸 유대봉
그 유대봉류 가야금산조가 부활했다. 가야금 연주자 백인영(55)이 살려냈다.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유대봉의 연주 테이프를 구해 가락을 정돈해서 음반으로 냈다. 뺄 건 빼고 추릴 건 추려서 40분 짜리로 정리했다. 맨 끝 휘모리는 1분 밖에 안되는 것을 3분으로 만들어 붙였다. 흩어졌던 가락이 정돈됨으로써 전통음악의 창고에 보물 하나가 추가된 셈이다.
백인영은 20대 초반이던 69년 유대봉에게 잠깐 산조를 배웠다. 유대봉이 가르치는 가락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 하도 오락가락해서 두 달 만에 집어치웠지만, 두고두고 그 가락의 여운에 사로잡혔다. 86년 첫 개인발표회 때 유대봉류 산조를 20분 정도로 짧게 선을 보였다. 죽은 유대봉이 살아왔다고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때의 감동을 잊지못한 음악평론가 김진묵이 백인영에게 녹음을 권해 이번에 음반이 나오게 됐다.
▲유대봉류 가야금 산조
유대봉류 산조의 매력은 뭘까. 백인영은 변화무쌍함을 꼽는다. 본청(기본음)에서 놀다가 갑작스레 단청(변조)으로 옮겨가는 등 가락이 기기묘묘하다는 것. 농현(弄絃·줄을 눌러 떠는 것)으로 한 줄에서도 여러 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소리가 둥글둥글 굴러가는 것도 별스럽다. 음반을 들어보면 줄이 건들건들 놀고, 흥이 우줄우줄 춤을 추는 것 같다. 경드름(서울·경기지방 음악 패턴)의 가볍고 화사한 얕은 떨림이 있는가 하면, 판소리 덜렁제(호령조의 위엄있는 소리)의 맛이 배어있고, 거문고 술대를 내려칠 때 나는 투박하고 강한 소리도 들어있다.
가야금 열두 줄로 다양한 기법의 다채로운 가락을 짠 유대봉의 솜씨는 불가사의할 만큼 기가 막힌 것이다. 백인영의 연주 솜씨 또한 감탄스럽다.
▲대중과 질펀하게 노는 백인영
그는 요새 보기 드물게 즉흥이 강한 연주자다. 무대에서 얌전히 연주하는 게 아니고 질펀하게 논다. 94년 서울 북촌창우극장에서 송년음악회를 할 때 그는 손님들에게 팩 소주와 안주를 돌렸다. 산조도 타고 「목포의 눈물」에서 「칠갑산」 「라노비아」까지 신나게 연주했다. 관객들은 춤추고 놀았다. 피아노를 무슨 사물악기 두드리듯 갖고 노는 빡빡머리 작곡가 임동창이나, 서양악기 연주자, 대중음악인과 어울려 노는 것도 거리낌이 없다. 유대봉류 산조의 적임자답다.
국악계에서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인다. 남들처럼 무형문화재로 지정받거나 대학교수 될 생각은 없고 자유롭게 연주하며 지낸다. 무대에 오를 때는 연주하기 딱 좋을 만큼 소주를 마신다. 술이 손가락에 기름칠을 하는지 귀신같은 솜씨로 줄을 희롱한다. 억누를 수 없는 광대의 끼가 흐르는 모양이다. 틀에 박힌 듯한 요즘 국악 무대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즉흥의 멋이 살아 움직이는 데, 그를 당할 사람이 없다.
『대중이 없는 음악가는 없습니다. 대중하고 호흡 맞출 줄도 알아야지 저 혼자 목에 힘주는 음악이 무슨 맛입니까. 나는 대중하고 같이 놀려고 뛰쳐나간 사람입니다』
그는 요즘 가야금 3중주를 작곡 중이다. 겨울에 관현악곡 작곡도 시작해 내년에 발표할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산조란 무엇인가
서양음악에 소나타가 있다면 우리 전통음악에는 산조(散調)가 있다. 산조는 기악독주곡의 형식이다. 피아노 소나타, 바이올린 소나타 하는 식으로 가야금산조, 거문고산조, 대금산조, 아쟁산조…등이 있다.
산조는 근대음악이다. 산조의 효시로 꼽히는 김창조의 가야금산조가 나온 것이 1890년대 일이니까 태어난 지 100년 정도 밖에 안됐다. 남도지방 무속음악인 시나위와 판소리에서 나왔다. 시나위 가락의 자유분방함, 판소리의 소릿길과 장단 틀이 산조에 녹아있다. 「흩어진 가락」이란 뜻을 갖고 있지만 형식미를 잘 갖추고 있다.
산조는 느린 장단에서 시작해 점차 빨라지는 가속도형 구조로 되어있다. 가장 느린 진양조부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를 거쳐 휘몰아치듯 빠르게 내닫는 휘모리까지 장단이 변한다. 장단이 바뀌는 것으로 악장이 구분되는 셈인데, 장단과 장단 사이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게 서양음악의 악장과 다른 점이다. 선율은 꿋꿋한 우조, 화사한 평조, 애달픈 계면조 등 여러 길을 따라 가는데 본청(기본음·중심음)의 음높이를 바꾸어 여러 조로 조바꿈함으로써 다채로운 가락을 뽑아낸다. 그렇게 쉼없이 흘러가면서 죄었다 풀었다 하는 것이 산조의 멋이다. 거기에 인생의 희로애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조는 짧으면 20분 안쪽, 길면 70분 짜리까지 있다. 누가 가락을 짰느냐에 따라 「누구류」라는 이름을 붙인다. 가야금산조가 가장 종류가 많아 최옥산류·정남희류·성금연류·김병호류·최옥산류·김죽파류·강태홍류 등 10여가지가 있다. 거문고산조는 한갑득류·신쾌동류·김윤덕류, 해금산조는 지영희류·한범수류, 대금산조는 강백천류·박종기류, 아쟁산조는 한일섭류·장월중선류, 피리산조는 지영희류·이충선류·박범훈류 등이 있다.
산조는 굳은 음악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열린 음악이다. 거문고산조의 명인 한갑득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가락을 타는디 「어떻게 가락을 잘 만들어서 듣는 사람 심장을 건드려주나」 하고 끊임없이 연구를 허니 가락이 한정이 없어. 수시로 변해. 공연 때마다 다르고 켤 때마다 달라. 그리고 즉흥적인 멋이 있어야 허니 한 음 켜놓고 그 다음에 동으로 갈지 남으로 갈지 북으로 갈지 서로 갈지 몰라. 그래서 산조가 어려운 거고 그래서 산조가 좋은 거여. 판소리도 마찬가지여. 자유자재하고 신출귀몰하고 구석구석 기묘하고 마음대로 사람을 울리고 웃기고. 그래서 국악이 좋은 거여』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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