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톰슨 지음이종인·이영아 옮김
푸른숲. 1만3,000원
2000년을 앞두고 세계는 새 천년 맞이에 부산하다. 각종 기념물과 기념행사로 지난 천 년에 멋진 마침표를 찍고 새 천 년의 기대와 야심을 표현하려는 것이다.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것일 뿐인데 웬 호들갑인가.
영국 저널리스트 데미안 톰슨(37)의 「종말」은 2000년에 걸친 기독교 종말론의 역사와 새 천년을 앞둔 20세기 말 종말론의 현장을 다룬 역사적 풍경화다. 고대 종교의 시간 개념부터 풀기 시작해 기독교 역사에서 밀레니엄의 개념이 뿌리내리는 과정과 그 뒤에 일어난 천년왕국 운동과 사건을 고찰한다. 그의 눈길은 최근 10년 간 벌어진 종말론 관련 사건도 분석하고 있다. 국가를 상대로 테러를 감행한 95년 일본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 카멜산에서 공동체생활을 하다 정부와 충돌해 비극적인 파국을 맞은 95년 미국 웨이코의 다윗파 사건, 92년 한국의 다미선교회 사건 등도 거기 포함됐다. 왜 기독교인들은 달력사의 변화에 집착하는가. 또 새 천 년기의 시작에 수많은 비신도들은 왜 가슴을 졸이는가. 지은이는 이러한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기독교에서 천 년이란 시간 단위가 특별한 것은 그것이 종말의 그림자를 끼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요한계시록은 무시무시한 종말과 그 뒤에 열릴 새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리스도가 다시 와 사탄의 군대를 쳐부수고 1,000년간 지상의 왕 노릇을 할 것이며 그 뒤 사탄이 풀려나 하느님의 군대와 마지막 전쟁을 치르고 나면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린다는 내용이다.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리스도가 언제 다시 올 것인지 그 날짜를 알아내려는노력이 기독교 초기부터 있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는 것은 헛된 짓』이라고 비판했지만 종말론적 예언의 힘은 지속됐다. 특히 교회가 모든 것을 지배한 중세 시대에는 종말 예언이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한 행동기준이 됐다. 인간중심주의가 화려하게 꽃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조차 종말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피렌체의 괴상한 설교자 사보나롤라는 임박한 파멸과, 피렌체가 새 예루살렘이 되는 황금시대를 예고했다. 그는 이단으로 처형됐지만 그의 영향은 지대했다. 유명한 「비너스의 탄생」을 그린 화가 보티첼리도 사보나롤라의 설교에 빠져 붓을 놓았다.
믿음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새 천년의 문 앞에서 종말론은 여전히 힘을 과시하고 있다. 지은이가 펼쳐보이는 20세기말 종말론의 파노라마 중 한국의 순복음교회 분석이 눈에 띈다. 또 한국에서 왜 그러한 계시적 기독교가 위세를 떨치는지 분석한다. 그는 『서울의 밤 하늘은 빨간 네온의 십자가로 물든다』며『한국의 서울만큼 그리스도의 재림을 열망하는 곳도 없다…20세기 말의 서울은 15세기 말의 피렌체보다 훨씬 더 계시적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고 썼다.
데미안 톰슨은 만만찮은 주제를 명쾌하고 때로는 신랄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그러한 글솜씨가 매끄럽게 전달되는 것은 번역(이종인·이영아 옮김)의 힘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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