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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사냥꾼] 연쇄살인범 내면심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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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사냥꾼] 연쇄살인범 내면심리는 어떨까

입력
1999.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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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더글러스, 마크 올셰이커 지음이종인 옮김, 김영사 발행, 8,900원

살인범은 범죄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 왜?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나 않았는지 확인하려고? 수사 진행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서? 아니다. 살인 당시의 스릴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음미하면서 환상을 재생시키기 위해서이다. 연쇄적이고 엽기적인 살인사건은 십중팔구 이런 범죄 심리가 작용한다.

범죄 사건을 분석하고, 적당한 혐의자를 가려내는 데는 범죄자가 어떤 심리로 사건을 저질렀는지 아는 일이 중요하다. 특별한 의도를 점치기 어려운 기괴한 살인 사건에서는 이런 작업이 필수이다. 국내에서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정도가 고작이지만 영화 「양들의 침묵」 「칼리포니아」 「내추럴 본 킬러」 「세븐」 「키스 더 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넓은 땅 미국에서는 연쇄 살인이 그리 낯선 일만은 아니다.

이 책은 미국연방수사국(FBI) 수사지원부를 만들었고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해결하도록 25년 동안 도운 수사관 존 더글러스가 소설가와 함께 쓴 사건 해결 기록이다. 그는 프로필링(Profiling)이라는 독특한 수사기법을 이용했다. 범죄 사건의 기록을 조사하고, 종신형이나 사형대기 상태에 있는 죄수들을 일일이 면담하면서 사건과 범죄자 심리상태의 유형을 만들어냈다. 그 유형들은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범죄 현장 보고서와 현장 사진, 검시 보고서, 피살자의 인상 착의, 나이, 인종, 범행 방식 등을 참조하여 혐의자를 좁혀나가는데 아주 쓸모있게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더글러스는 이런 방식을 사용해 수사를 돕거나 사건을 해결한 20여 년의 경험들을 찬찬히 설명해 나간다.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FBI 행동과학부장으로 나오는 잭 크로퍼드의 실제 인물이기도 한 그가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사건들은 너무도 경악스럽다. 끔찍한 살해의 현장들과 범죄 수법은 현실이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더 잔인하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살인마 에드 켐퍼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의 미움을 샀다. 어머니와 늘 다퉜고 결국 이혼하고만 그의 아버지와 닮았다는 이유로. 켐퍼는 워낙 거구여서 어머니는 그가 누나 수잔을 집적댈까봐 보일러실 옆 지하방 밖에서 문을 채워 잠을 재웠다. 결국 그는 집에서 내쫓겨 산골의 친할아버지 집에 보내졌고, 거기서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조부모를 모두 살해한다. 정신이상 범죄자 수용 병원에 있다가 6년만에 퇴원. 그리고 3년 뒤부터 6명의 여대생을 살해해서 시체를 난자하고 급기야는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던 어머니를 죽인 뒤 광란의 살인을 끝냈다.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이런 엽기적인 살인행각은 결손가정에서 자랐거나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경험이 있고, 이성을 사귀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는 백인들이 주로 일으켰다. 켐퍼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신형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하지만 더글러스는 켐퍼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연쇄 살인범의 전형이라고 지적한다. 『그에게서 좀더 안정되고 사랑 넘치는 가정 생활이 보장되었더라면 과연 그런 끔찍한 살인 환상을 키울 수 있었을까』 켐퍼의 살인은 어머니에 대한 한없는 증오와 이를 보복하려는 예행 연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 책은 프로필링이라는 수사 기법의 유용함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다. 이와함께 더글러스는 정신병의 문제를 조금씩 가진 희대의 살인마들이 어떤 내면 세계를 가졌는가를 엿볼 수 있도록 돕는다. 흔히 마주치기 힘든 사건의 기괴함, 엽기성도 책을 읽는 재미이지만 범행의 배경에 한결같이 깔려있는 가정 결손이나 소외 등의 문제는 이 책의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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