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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인권 브랜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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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인권 브랜드론

입력
1999.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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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중 미군이 저지른 노근리 양민학살 사건이 새롭게 조명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전 동티모르 파병문제를 다룬 국민회의 세미나에서 나왔다는 「인권 브랜드」론이 생각난다. 재야출신인 김근태 부총재가 『우리도 인권과 민주주의를 브랜드삼아 국제평화의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전투부대 파병에 적극론을 폈다는 보도다. 전투부대 파병을 새삼 시비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만, 생경한 「인권 브랜드」론과 함께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인권 브랜드」론은 19세기초 이래 자유와 인권을 앞세워 국제질서의 조정자를 자임한 미국의 도덕주의 외교철학을 닮았다. 먼로 독트린과 윌슨주의가 대표하는 미국의 도덕주의 신화는 국민의 자부심과 허영심을 자극, 실제로는 국익을 좇아 적나라한 힘을 행사한 대외개입 정책의 명분이 됐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미국사회가 스스로 어두운 민권현실과 베트남전의 부도덕성 등에 눈뜨면서 신화는 안에서부터 여지없이 무너졌다.

■미국은 그 충격을 새로운 레이건주의 신화와 경제회복에 힘입어 웬만큼 치유했다. 그러나 지금도 진정한 인권국가로 평가받지는 못한다. 우리는 어떤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적폐를 고치는 것만도 벅찬 현실이다. 분단과 동족상잔, 베트남 참전, 광주학살 등의 기억 탓에 평화와 인권 이미지를 내세울만한 계제가 아직은 못된다. 제 나라, 제 민족도 다 돌보지 못하는 처지에 신화부터 만드는 것은 작은 성취에 자만한 착각이거나 허영이다.

■유엔 평화유지 활동 참여는 나라의 이미지와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바람직하다. 그러나 여러 나라가 이해를 다투는 분쟁지역에 선뜻 정예 전투부대를 보내는 것은 오히려 부정적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다. 또 전투지역에는 노근리 사건이나 베트남전의 밀라이 학살과 같은 불행의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런 이치를 외면한채, 알맹이와 다른 브랜드에 먼저 신경쓰는 것은 어리석다. 허영심은 냉혹한 국제사회에서는 더욱 존경받지 못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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