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Mr.Lee…, 혀를 너무 굴려 죄송합니다…』 방송복귀 시기를 알아보려고 8월에 개그맨 이홍렬(李洪烈·45)씨의 미 로스앤젤레스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때 흘러나온 자동응답이었다. 웃기는 음성녹음과는 달리 정작 28일 만난 그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알고 보니 『방송에서만 웃겨요』가 그의 직업철학. 지난해 3월 재충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던 「뺑코」가 1년6개월만에 돌아왔다. 그는 10월18일 가을프로그램 개편과 함께 SBS 「이홍렬 쇼」 를 101회부터 이어간다.『큰 부담입니다. 시청자들의 기대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인기절정일 때 홀연히 떠났던만큼 그는 요즘 밤잠을 설쳐가며 아이디어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일주일에 3~4 차례 하는 제작팀의 아이디어회의에도 빠짐없이 참석한다. 그가 말하는 결론은 간단하지만 교과서적이다. 『성실히 준비하고 노력하면 반드시 시청자들이 평가해 준다는 것을 짧지 않은 개그맨 생활에서 체득했습니다』
그의 노력은 「뺑코」라는 별명을 얻은 과정에서도 알 수 있다. 데뷔 때부터불린 「촉새」라는 별명이 나이에 걸맞지 않은데다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래서 큰 코를 트레이드 마크로 내세우기 위해 94년 한 프로그램에서 과감히 500원짜리 동전을 코에 넣어 「뺑코」라는 별명을 쟁취(?)했다.
하룻밤 사이에 인기판도가 바뀌고 정상의 스타가 무너지는 냉혹한 연예계에서 퇴물취급 당하기 십상인 40대 중반의 그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뛰어난 그러나 꾸밈없는 입심, 자연스럽고 편안한 웃음, 천진스러운 말과 행동, 다소 어눌하면서도 연륜이 묻어나는 재치를 사람들은 알아준다. 그러나 이런 능력과 기질은 노력의 산물이다. 현재의 인기보다 미래에 투자할 줄 알기 때문이다. 91년 일본에 유학을 떠났을 때나, 지난해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갈 때 그는 5~6개 프로그램을 맡는 최정상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남들은 개그도 잘 할 뿐 아니라 춤이나 노래도 잘 해요. 저는 할 줄 아는게 개그밖에 없어 외국체험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공부할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요. 후배 서경석이 대본 외우는 것을 보고 기가 질렸습니다. 하지만 공부못할 머리라고 탓만 하면 발전이 없잖아요』 『마흔 넘어 영어하려니까 무척 어렵데요. 그렇지만 김대중대통령도 마흔 여덟에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데 저는 얼마나 빨리 시작한 겁니까?』 처음으로 너스레를 떤다.
그는 한 끼를 때우기 위해 중학 시절부터 신문을 돌리며 개그맨의 꿈을 꺾지 않았다. 서울공고를 졸업하고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하고 밤업소에서 개그를 하다 79년 방송에 데뷔했다. 대학교수가 진행하는 프로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대학 안 나온 개그맨과 인터뷰하기 싫다는 말을 듣고 그날로 공부를 시작해 서른 두 살에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코미디나 개그는 천박한 언행으로 억지 웃음을 자아내는 저질이라는 지적에 대해 『일정부분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20년 동안 많이 발전했잖아요. 실력을 갖춘 후배들이 노력하고 있어 크게 걱정 안합니다』 방송사의 고질적 병폐로 통하는 프로그램 획일화에 대해서도 『오랜 노력 끝에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 다른 방송사에서 무조건 베끼는데 이것이 바로 방송의 질을 떨어뜨리고 다함께 망하는 주요 원인입니다』라고 일침을 놓는다.
그는 미국에 아내와 두 아이를 놔두고 혼자 귀국했다. 『12년 동안 묵묵히 내조한 아내가 대학공부하겠다고 해요. 못 배운 설움을 알기 때문에 열심히 하라고 했어요. 하지만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마음이 싸하네요』 아내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매일 이메일로 그리움을 전하고 통화료가 싼 일요일 밤에 국제전화를 한다.
『시청자들에게 늘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이홍렬씨. /김재현기자
약력
54년 서울 출생
73년 서울공고 졸업
79년 TBC 「달려라 청춘열차」로 데뷔
91년 중앙대 연극영화과 졸업
「청춘만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영 일레븐」 「오늘은 좋은 날」 「코미디 채널 600」(이상 MBC) 「출발 대행진」(KBS) 「TV전파 왕국」 「이홍렬 쇼」(SBS) 등에 출연
94년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
95년 한국방송대상 코미디부문 수상
96년 한국방송대상 MC부문 수상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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