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 S아파트에서 장애인주차장을 가로막은 차량을 충돌하는 「분노의 시위를 벌였던 김덕중(金德重·27)씨. 그도 한때는 잘 나가는 밤무대 가수로서, 방송사 리포터로서 꿈많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95년 아파트 10층의 집 유리창을 닦다가 추락하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그랬다.그는 지금 대소변 가리는 일까지 남의 도움을 받아야하고 수십가지 약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하는 척수 1급장애자다. 게다가 노모가 취로사업으로 벌어오는 돈에 전적으로 생계를 맡겨야한다. 벼랑끝에 내몰린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을 등지기 위해 손목에 칼을 대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자살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몇개월전 컴퓨터 통신을 통해 다른 장애인들을 만나면서 장애인도 살아야할 권리가 있음을 느꼈다. 얼마전 장애인 가요제에 나가는 등 놓았던 마이크를 다시 잡았고 장애인권익을 위한 방송 리포터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몇년간을 칩거하던 2평짜리 골방에서 다시 세상밖으로 뛰쳐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전과 달랐다. 그의 표현대로 『정상인으로서는 보이지 않던, 이 사회의 무관심과 냉정함이 살을 에이게 했다』 휠체어로 다닐 수 있게 보도블록의 턱을 낮춰달라는 끈질긴 탄원에도 관계 관청과 주위의 시선은 차가웠고 아파트에 장애인 전용주차장을 만드는데도 그는 수십차례의 탄원서를 써야했다.
장애인 주차장으로 표시돼 있는데도 버젓이 차를 대는 정상인들. 휠체어가 턱에 걸려 꼼짝 달싹을 못하는데도 냉정히 지나치는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은 장애인으로서 살아남으려는 김씨의 가슴에 또다른 흉터를 그려댔다.
김씨는 28일 컴퓨터를 두드려 피해자들에게 사과문을 쓰고 있었다. 『흥분한 나머지 잠시 이성을 잃었다』며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글끝에 『장애인에게도 희망을 보여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