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갈림길이었던 고3때를 생각해 보곤 한다. 그리곤 한 선생님을 떠올려 본다. 그때 그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갔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마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으리라는 결론을 내리긴 하지만 어쨌든 그 선생님은 내 인생의 물굽이를 트는 삽질에 조금 힘을 보태셨다.인문계가 아닌 실업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예전에는 커다란 컴플렉스였다. 많은 자식을 둔 아버지로서는 딸을 여상에 진학시키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었을테지만 정작 딸은 여상 배지를 달므로해서 모든 꿈이 박탈당하는 쓰라림을 안고 3년을 견뎌야 했다. 상업과목이 적성에 맞을 리도 없고, 또 그런 과목을 공부해야할 이유도 찾을 수 없는 3년간의 허송세월이었다.
한없이 소심하고 말이 없던 나를 간혹 알아본 선생님들은 대개 인문과목 선생님이셨다. 그중 한 분이 고3때의 담임이었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에게 공부를 권하셨고 많은 배려를 해 주셨다. 대학을 진학하려는 몇몇 학생을 따로 모아 국·영·수 등 주요 과목 담당 선생님으로 하여금 특별지도를 주선해주셨고 심지어 창업과목 시간에는 담당 선생님의 양해를 받아 그 시간에 입시공부를 할 수 있도록까지 해주셨다. 결국 대학에 진학했다. 자신의 힘으로 인생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하나를 옆구리에 차게 되었다.
열쇠 하나를 차게 됨으로 해서 내 눈은 뜨이고, 그냥 눈 질끈 감고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이 사회 곳곳에 놓여 있어 인생굽이가 무난하지도 않았다. 내 열쇠가 나를 장애인 시늉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단한 보물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는 더더욱 못되었다.
이제는 녹까지 슬고 무딜대로 무뎌버린 열쇠지만 어쨌든 은장도를 차듯 자신을 버티게 해줄 열쇠 하나를 차도록 부추겨준 그 선생님이 그래도 고맙다. 정작 학교에 교육이 없다는 극언까지 심심치않게 듣는 요즘 교육풍토인데 가르치는 학생의 적성이나 능력 따위들을 제대로 알아보고 인도해준 그 선생님이 가끔 생각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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