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천문학(古天文學)이 우주와 역사의 감춰진 비밀을 푸는 열쇠로 부상하고 있다. 고천문학이란 과거 역사서에 나타난 천문관련 기록을 연구하는 학문.때로 수백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 천문현상을 연구하는 데에는 역사서 기록된 장기 관측자료가 지극히 유용하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창고 속에 보물을 쌓아둔 셈이다. 2,000년 이상 꾸준히 천문관측이 이루어져 기록이 남아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중국뿐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천문관측 역사는 기껏 300년. 우리는 더 거슬러올라가면 이미 기원전 5,000년경부터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등을 새긴 고인돌이 북한지역에 약 200여기가 남아있다. 고구려 천문도를 조선초 다시 그린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는 1세기경의 고구려하늘을 나타낸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하늘 모습이다.
서울대 박창범(천문학과)교수는 『진정한 고천문학이란 고대의 천문자료를 통해 오늘날의 천문연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98년 양홍진(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씨와 박창범교수팀이 고려시대 흑점·오로라관측기록을 통해 태양활동의 장·단주기를 밝혀낸 것이 그러한 예다. 관측기록을 비교한 결과 태양의 활동 단주기는 10.5년(현재는 11년)으로 약간씩 길어지고 있다는 점, 장주기는 약 80년정도라는 새로운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천문학수준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때는 조선 세종대. 천문기구인 서운관(書雲觀)이 확대되고 각종 관측기기가 제작됐으며 세종 자신이 뛰어난 천문학자로서 관리들이 풀지못한 난제를 해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의 천문기록은 채 정리되지 않았을 정도로 방대하다.
고천문학은 또 역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시한다. 개기일식, 혜성, 유성과 운석, 특이한 행성운동등 천문역학적으로 드문 현상을 통해 역사적 수수께끼를 푸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98년 일본 나라(奈良)현에서 발견된 기토라고분의 천문도벽화가 평양의 밤하늘을 그린 것이라 해서 역사학계의 관심을 끌었던 것도 나라와 고구려의 연관성을 추정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 박창범교수는 삼국시대 관측된 66회의 일식기록, 삼국사기에 8번 나오는 태백주현(太白晝見·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등을 분석,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일식은 관측장소가 극히 제한돼 있는데 백제의 기록에 따르면 초기 관측지역이 중국 발해만 유역에서 후기 한반도 남부로 옮겨온 사실이 드러난 것. 이는 백제의 세력권이 중국에까지 미쳤다는 역사학계의 일부주장과 무관치 않은 것이다. 이처럼 고천문학은 논란이 되고 있는 삼국의 영토권, 신화적으로 축소해석된 고대사의 진위를 가르는 객관적인 근거가 될 수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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